여순사건 유족 슬픔 하루빨리 씻어주자 / 김용덕

2023년 10월 18일(수) 20:17

김용덕 전남도 여순사건지원단장

올해 10월19일은 여순 10·19사건 발생 75주년이다. 여순 10·19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 신월리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가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당시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은 “우리의 사명은 국토를 지키는 것이지, 동포를 죽이는 일에 우리는 갈 수 없다”며 출동하지 않았다.

이에 당시 정부가 육·해·공 합동으로 진압군을 편성해 진압하자 봉기를 일으킨 제14연대 군인들은 진압군을 피해 지리산, 백운산 등 전남·북 및 경남 일부 지역에 있는 산으로 피신했다. 산으로 피신한 자들을 우리는 ‘빨치산’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1955년 4월 1일 지리산 입산 통제 해제 때까지 무려 7년간이나 진압군에 저항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힘없는 주민들은 낮에는 군인과 경찰에 협조를 해야 했고 밤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먹을 것을 찾는 빨치산의 말을 들어야 했다.

이처럼 여순 10·19사건은 시간적으로는 1948년 10월19일 정부 수립 2개월 만에 일어났으니 정부 조직이 어수선한 시기였고 공간적으로는 제주 4·3사건이나,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처럼 일부 지역이 아닌 여순, 순천, 남원 등 전남·북 전 지역과 경남 거창, 함양 등 경남 일부까지 포함돼 여타 사건보다 넓은 게 특징이다. 즉 3개 광역시·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1948년 같은 해에 일어난 제주 4·3사건보다 특별법이 20년이나 늦게 시행돼 아쉬움이 크다. 물론 국회 발의는 16대부터 꾸준히 했으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다행히 21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2020년 7월 여순사건특별법이 발의됐고 다음 해인 2021년 6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공포를 거쳐 2022년 1월21일부터 시행됐다. 여순 10·19사건이 일어난 지 73년 만의 일이다. 여순 10·19사건 당시를 기억하는 분이 과연 몇 분이나 계시겠는가? 이 분들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사건의 진실 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유족이나 국민들에게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여순 10·19사건 희생자의 유족이나 지인들은 시·군 또는 읍·면·동에 희생자 및 유족 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 기간은 2023년 12월 말까지다. 신고 기한이 2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나 아직도 신고를 머뭇거리거나 기피하려는 유족들이 많은 것 같다. 여순 10·19사건 희생자는 1만1천131명이라고 1949년 전남 보건후생국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발표가 여순 10·19사건 희생자를 온전히 드러냈다고 볼 수 없지만 현재까지 약 7천100여명이 신고했으니 앞의 발표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4천여명은 아직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여순사건 특별법에 따르면 신고를 해야 여순사건 실무위원회에서 전문 조사관들이 조사를 한 뒤 여순사건 명예위원회에서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희생자 신고부터 선행돼야 한다.

둘째, 75년 동안 왜곡된 여순 10·19사건에 관한 국민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전남 지역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거북선과 판옥선을 만들어 왜구를 물리친 훌륭한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합심해 국난 극복에 동참한 후손인 것이다. 이들 후손을 보고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유족들은 여순 10·19사건으로 인해 내적으로는 부모의 죽음, 가족 해체 등 가난 속에서 고통을 받았고 외적으로는 연좌제가 될까 봐 금기의 역사 앞에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으며 살아왔다. 이들의 멍에를 국민들이 풀어줘야 한다.

셋째, 이를 위해서 중앙정부는 희생자에 대한 결정, 피해 보상과 위령사업을 위한 정책을 조속 시행해야 한다. 여순 10·19사건 유족들의 연세가 대부분 80대 전후 고령이다. 최근에도 희생자·유족 신고 접수를 한 유족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여순사건 당시 부모를 잃은 자식은 평생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보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유족들은 불효자라는 자책감으로 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추모관,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한 기념관 건립을 중앙정부는 조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치유되지 않은 아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혼란한 정국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희생자와 그 유족의 한을 우리 국민 모두가 하루빨리 씻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