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광양 백운산 둘레길 7코스(중흥사 토성길)

깊어가는 어느 가을날, 오랜 역사의 숨결을 만나다

2023년 10월 24일(화) 19:24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 추산시험장 주변에는 수령 60-70년 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광양IC를 빠져나와 광양동천을 따라 달려간다. 백운산 남쪽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광양동천은 백운산 계곡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하천이다. 하천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농경지가 형성됐고 여러 마을이 둥지를 틀었다. 광양동천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다보면 정면에서 백운산 능선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옥룡사지주차장은 백운산둘레길 1코스 출발지이자 6코스 도착지점이다. 아울러 백운산둘레길 7코스 출발지이기도 하다. 오늘은 7코스를 걷는다. 옥룡사지주차장에서 700m 쯤 떨어진 추산교까지는 백운산둘레길 6코스와 겹친다.

추산교에 서니 백운산자연휴양림 쪽에서 흘러오는 추산천이 유유하다. 추산교 양쪽으로 추동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추동마을 앞 도로변에 세워진 ‘고산 윤선도 마지막 유배지’라는 표지석에서 눈길을 멈춘다.

윤선도는 1659년 자신을 총애했던 효종이 승하한 후 함경도 삼수로 유배당한다. 함경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윤선도는 현종 6년(1665)에 이곳 광양시 옥룡면 추동마을로 이배되었다. 그리고 2년 2개월 후 유배에서 풀려났다. 현종 8년(1667) 광양 유배에서 풀려난 고산은 80세가 넘은 나이로 아끼던 보길도에 내려가 은거하다가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산 윤선도가 2년 2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추동마을. 1659년 자신을 총애했던 효종이 승하한 후 함경도 삼수로 유배당했던 윤선도는 현종 6년(1665)에 지금의 광양시 옥룡면 추동마을로 이배됐다.

황금빛 물결 뒤로 펼쳐지는 추동마을이 풍요롭게 바라보인다. 이러한 가을풍경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해준다. 추동마을 앞에서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 추산시험장 입구까지는 자동차가 다니는 2차선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를 벗어나 추산시험장 진입로에 들어서니 가지가 아래로 처진 처진개벚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서울대 남부학술림 추산시험장 주변에는 수령 60-70년 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100년 전에 조림한 나무들도 있다. 길을 걷다보면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스트로브잣나무, 화백, 일본전나무 군락을 만난다.

작은 고갯길에 올라서니 백운산둘레길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백운산둘레길에는 이정표가 갈림길마다 세워져있고, 표지리본이 걸려 있다. 길가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산에 온께 아~따 좋아 부러” 같은 광양사투리로 적어놓은 글귀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중흥사는 백운산둘레길에서 약간 비켜나 있다. 중흥산성에 둘러싸여 있는 중흥사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창건된 사찰이다.
중흥산성에 둘러싸여 있는 중흥사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창건된 사찰이다. 옥룡사를 창건한 도선국사가 이곳에 중흥사를 창건했다.

옥룡사를 창건한 도선국사가 이곳에 중흥사를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는 이곳 중흥사가 의병 승병의 훈련장으로 사용됐다. 주변에서 의병 승병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중흥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말았다. 그 후 작은 암자가 건립돼 유지돼 오다가 다시 폐사됐다. 지금의 중흥사는 1963년 중건됐다.

중흥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여러 전각들이 단정하게 배치돼 있고, 경내환경 또한 정결하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는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제103호)의 모형을 만난다. 2.5m 높이의 쌍사자석등은 원래 중흥산성 안에 있던 작은 암자(지금의 중흥사)에 삼층석탑과 함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자기나라로 반출하려다 실패하고 경복궁에 옮겨 놓은 것을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쌍사자석등(모형) 옆에는 중흥산성 삼층석탑(보물 제112호)이 자리하고 있다.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9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층석탑은 중흥사터를 가장 오래 지켜온 산증인이다.

중흥사에서 산성로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 백운산둘레길이 지나는 임도를 만난다. 능선으로 토성인 중흥산성의 흔적들이 있다. 중흥산성은 해발 268-406m 높이의 6개 산봉우리를 아우르고 있으며, 성 안에는 계곡도 있다. 중흥산성은 계곡 능선을 따라 자연지형을 잘 이용해 일정한 두께로 흙을 다져 쌓은 토성이다. 3.4㎞ 길이의 외성과 240m 길이의 내성으로 이뤄져있다. 통일신라 후기 또는 고려시대 초기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운산둘레길은 임도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다. 숲으로 둘러싸인 임도는 풀벌레소리와 새소리만 들려올 뿐 한없이 고요하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은은한 향기를 뿜어준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이 트이더니 깊은 산골에 작은 분지가 나타난다. 이곳에 부저농원이라 불리는 민간농원이 자리하고 있다. 2차선 도로를 건너 700m 쯤 포장길을 따라가면 근래에 들어선 도솔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도솔마을을 지나 다시 임도를 따라서 간다. 산허리를 몇 차례 굽이돌고 나니 눈앞에 대단위 태양광시설이 나타난다. 태양광시설 앞을 지나 865번 지방도로로 내려온다.

도로 옆으로 백운산 도솔봉 둥주리봉 형제봉 남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모여든 광양서천이 흐른다. 백운산과 백운산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옥룡면에 비하여 봉강면 골짜기는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한산하고 조용하다.

둘레길은 주로 하천 둑길을 따라 이어진다. 하천가 논에는 누렇게 익는 벼들이 풍요로운 가을풍경을 선사해준다. 백운산 골짜기에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봄에 하얗게 꽃을 피우는 매실밭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도솔봉 둥주리봉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백운산 서부능선과 주능선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들이 봉강면 골짜기를 감싸고 있다.

신촌마을에 들어서니 담벼락 곳곳에 그려진 벽화가 산뜻하다. 신촌마을은 형제의병장마을로 알려져 있다. 1560년대 이곳 신촌마을에서 태어난 의병장 강희보, 강희열 형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단성(경남 산청)에서 왜군과 싸웠다. 형제는 1593년 왜군 10만 명이 진주성을 공격하자 수성군의 부장과 전투대장으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신촌마을 담벼락 곳곳에 그려진 벽화가 산뜻하다. 신촌마을은 형제의병장마을로 알려져 있다.

후손들은 마을 뒤편에 1988년 두 형제의병장을 기리는 쌍의사(雙義祠)라는 사우를 건립했다. 쌍의사 입구에서 편백나무 가로수가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두 의병장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신촌마을에서 태어나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왜구와 싸우다 순절한 강희보, 강희열 형제 의병장을 기리는 쌍의사.

묘역을 지나 하조마을로 가는 길은 조용한 오솔길이다. 솔숲길을 걷다가 울창한 편백나무숲길을 지나기도 한다.

하조마을에 도착했다. 하조마을 입구에서 소나무 두 그루가 늠름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 소나무를 마을주민들은 용란송이라 부른다. 소나무에 뿌리 윗부분에 커다란 돌이 박혀있는데, 그 모습이 용의 알처럼 보인다고 해서 용란송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용란송이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줘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고 믿는다. 용란송을 바라보며 나도 소원을 빌어본다. 내 마음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가 이뤄지기를….
하조마을 입구에서 용란송이라 불리는 소나무 두 그루가 늠름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소나무에 뿌리 윗부분에 커다란 돌이 박혀있는데, 그 모습이 용의 알처럼 보인다고 해서 용란송이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광양 백운산둘레길 7코스는 1코스에서 6코스까지 백운산 둘레를 한 바퀴 돌고나서 더 넓게 돌아가는 코스로, 광양시 옥룡면과 봉강면을 연결한다.
※코스 : 옥룡사지 주차장-추산시험장-중흥사-부저농원-개룡마을-신촌마을-하조마을
※거리, 소요시간 : 15.7㎞, 5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주소 : 옥룡사지주차장(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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