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523) 하늘가 우리 임을 따라서 밤낮으로 저리 흐르련만

2023년 10월 24일(화) 19:24

莫愁曲(막수곡) - 동계 이영보
二八吳娃花揷頭 每逢春日動春愁(이팔오와화삽두 매봉춘일동춘수)
若爲化作前江水 天際隨君日夜流(약위화작전강수 천제수군일야류)
이십 팔 예쁜 아씨 머리에 꽃을 꽂고
해마다 봄이 되면 봄 시름에 싱숭생숭
만약에 강물이 되면 임 따라 흐르리라.

선현들의 시(詩)의 대체적 성향은 한(恨)과 눈물로 뒤범벅 됐다. 한이 있기에 시가 있었고, 눈물이 있었기에 시의 존재 가치가 높았다. 가슴속 근심을 풀기 위해서 시를 썼고, 시를 써놓고는 고저장단에 맞춰 중얼중얼 음영했으니 이것이 한시 창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곡을 붙이지 않는 한의 노래를 썼던 모양이다. 열여섯 예쁜 아씨가 머리에 꽃을 꽂고, 해마다 봄날만 되면 봄 시름에 싱숭생숭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하늘가 우리 임을 따라서 밤낮으로 저리 흐르련만(莫愁曲)으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동계(東溪) 이영보(李英輔:1686-1747)로 조선 후기의 학자다. 유가의 경전과 제자백가에 통했고, ‘사기’를 연구해 역사학에도 일가견을 가졌던 인물이다. 고대 인물의 선과 악, 정치의 잘잘못을 기탄없이 비판했다 한다. 1743년 사직하고 낙향해 오직 후진양성에만 힘썼다 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열여섯 예쁜 아씨가 머리에 꽃을 꽂고 / 해마다 봄날되면 봄 시름에 싱숭생숭 했네 // 만약 다시금 세상에 태어나면 넘치는 앞 강물 되어서 / 하늘가 우리 임을 따라서 밤낮으로 흐르련만’이란 시상이다.

위 시제는 ‘근심이 없는 곡조’로 번역된다. 한 소녀가 한 봄날이 무심히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다음을 상상했다. 머리에 꽃을 꽂고 봄날이 간다. 바람이 치마폭을 감싸면서 아지랑이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사랑하는 임은 멀리 간 후 오지 않고, 날 두고 강물은 저 혼자서 흐른다. 저 강물 끝에는 우리 임 계시겠지. 보고픈데 왜 못 가나. 마음만 안타깝다.

시인은 이와 같은 상상을 하면서 부푼 가슴을 쓸어내려 앉는 마음을 달래려고 했을 것 같다. 열여섯 예쁜 아씨 머리에 꽃을 꽂고, 해마다 봄날만 되면 봄 시름에 싱숭생숭 했다고 했다. 봄날의 깊은 시름이란 한 모습이다. 이유 없는 짜증이랄까. 오지 않는 사람을 간곡하게 그리워하는 그런 모습과 서성임이었으리라.

화자는 선경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후정은 보다 적극적이자 도전적인 의지의 한 모습을 보인다. 만약에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차라리 앞 강물이 되어서, 하늘가 우리 임 따라 밤낮으로 흐르련다는 시적인 얼개를 만들었다. 임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그저 바라볼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몹쓸 상사에 병들어 있는 나를 두고 봄날이 가고 있음이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二八: 이팔청춘. 곧 열여섯. 吳娃: 예쁜 아씨. 花揷頭: 꽃을 머리에 꽂다. 每逢: 매번 만나다. 春日: 봄날에. 動春愁: 봄의 근심에 동하다. // 若爲: 만약 ～이 되다. 化作: 화하여 짓다. 前江水: 앞 강물이 되다. 天際: 하늘가. 隨君: 그대를 따라서. 日夜流: 밤낮으로 흐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