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대 칼럼]지정학적 판구조론 - 좀 더 평화로운 지구촌은 불가능한가? |
| 2023년 10월 26일(목)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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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땅의 움직임의 근원을 탐구하다 보면 대륙이 움직인다는 사실에 가 닿는다. 거대한 유라시아나 아프리카, 중남미와 같은 대륙도 매 순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지구 내부의 들끓고 있는 용암 덩어리 위를 거대한 지각의 판이 떠다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발생하고, 산맥이 형성되는 원인을 따져보면 결국 거대한 지각의 판이 이동하면서 서로 부딪치고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지구의 대지가 여러 개의 판을 형성하고 있어서 각종의 지질학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이론을 지질학에서는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이라고 한다.
최근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전쟁이 발발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인명 살상과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건물들이 매일 눈앞의 생생한 이미지로 전달되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이 크다. 이미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묶여있는 현 시대는 먼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라 하더라도 즉각적으로 내 일상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정치적 긴장상태와 갈등의 고조, 또는 경제적인 불경기와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의 형태로 내 일상의 삶에 침투한다. 그러니 먼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라고 해서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이익을 얻을 것 같지 않은 이런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전쟁이 발발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욕심을 자제할 줄 모르는 인류의 사악한 본능에 따른 것이라는 오래된 가설부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판단 때문이라는 가설, 화해하기 어려운 종교나 이념 상의 갈등 때문이라는 가설, 거대 관료조직의 기계적 메커니즘을 일컫는 전쟁 기계에 대한 예속 등 다양한 가설이 제시된다. 어쩌면 이 모든 가설들을 종합해야만 전쟁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는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전쟁의 원인은 복잡하고 다단하다.
최근의 전쟁은 ‘지정학적 판구조론’이라 이름 붙일 만한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정학(geopolitics)은 지리적 환경이 국가에 미치는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영향을 거시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다. 지정학적 판구조론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거대한 판과 판이 맞물리는 경계지역에서 분쟁과 전쟁이 빈발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세계 정세는 이런 시각에서 살펴보더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세계의 곳곳에서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과 전략적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분쟁을 겪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러하고 하마스의 기습적인 공격에 의한 이번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그러하다.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을 배제하고 전쟁 발발의 원인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전쟁은 무고한 시민의 무자비한 희생을 야기하기 십상이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있어서도 지도자들의 전략적인 판단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이 보인다. 인도주의를 고려한다는 미미한 조치들이 그나마 인류의 양심을 조금이나마 대변해주는 것일까?
일상의 삶을 살고 있는 지구촌 시민의 입장에서 이 전쟁의 비극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하는 참담한 생각도 든다. 지질학적 판구조론이 말하듯이 하루 하루의 아주 미미한 움직임이 모여서 대륙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된다고 한다면 지구촌을 좀 더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지구촌 시민들의 책임의식이 모일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한반도 역시 지정학적 판구조론에서 본다면 세계적인 패권경쟁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위기국면으로부터 결코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반복되는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시민들의 참상 앞에서 전쟁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류 문명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