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부자 / 조 안

2023년 10월 29일(일) 19:24

말동무 하나 없이 몸만 다 큰 아이가
웃음을 입에 물고 빨래를 하고 있다
아빠를 든든히 지킬
야광 작업복 매만진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아빠만 있으면 돼
너만 있으면 된다

서로의 얼굴과 눈빛
매일의 양식이다
(시조집 ‘자작나무 옹이’, 책만드는집, 2023)

[시의 눈]

생각만 해도 사랑하고픈 사람이 있듯, 보기만 해도 배불러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 아버지와 아들 그 ‘부자’(父子)가 ‘부자’(富者) 되는 그거지요. 주인공은 엄마를 여읜 철민이군요. 그는 매일 밤일 가는 아빠의 작업복을 빱니다. 아빠옷 빨래할 때가 젤 즐겁다고 말합니다. 체격은 듬직하지만 사실은 지적장애아군요. 하지만 그는 웃음을 달고 있습니다. ‘철민아 뭐가 필요하니?’ 어느 날 아빠가 묻습니다. 아마 월급을 탔나 봐요. ‘나 아빠만 있으면 돼’ 철민이가 간단 대답합니다. ‘아, 나도 너만 있으면 된단다’. 아빠도 맞장구를 치고 맙니다. 같은 마음이 부딪치자, 아빠와 철민이는 쳐다보다 확 웃습니다. 이제 부자(父子)는 부자(富者)가 되어 저녁을 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 껴안습니다. 부자(父子)가 먹지 않고 배부른 그 부자(富者)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3초입니다. 마침 마루 위 귀뚜라미 하나가 풀썩 뜁니다. 조안 시인은 서울에서 나 2012년 ‘유심’으로 등단했고, 시집 ‘지구에 손 그늘’(2018)을 펴냈습니다. 그는 청빈의 거울로 현대인의 정서를 담담히 비쳐내며 거기 구름조차도 걷히게 하는 시인이지요.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