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작품세계, 인간 본질 묻고자 했죠” 한희원 초대전 ‘존재와 시간’…12월17일까지 시립미술관 1970·80년대 민중미술부터 철학적 사유 담긴 최근작까지 최명진 기자

2023년 10월 30일(월) 19:52

작품 ‘레퀴엠’ 앞에 선 한희원 작가

한희원作 ‘가난한 사람들’

“제 작품세계는 인간과 자연이 갖고 있는 변하지 않는, 어떤 근원적인 정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1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5, 6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존재의 시간’ 전시장에서 한희원 작가는 자신의 50여 년 작품세계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로, 그의 초기작부터 인간 본질을 주제로 제작한 신작까지 회화 50여점과 아카이브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작가가 대학 시절 그린 1978년작 ‘가난한 사람들’은 100호가 넘는 대작이다. 풍경화가 주를 이뤘던 당시 화단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던 풍의 그림으로 ‘민중미술의 시초’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양동에서 천을 사다 세탁실에 맡겨 바느질로 연결한 캔버스예요. 당시 워낙에 큰 그림이라 제대로 보관되지 못해 여기저기 방치됐어요. 그 사이 누가 칼로 찢어 복원을 맡길 수 없을 정도로 험하게 손상됐죠. 저에겐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 그대로 볼 순 없었습니다.”

그렇게 작가는 약 한 달 간 하루 7-8시간씩 복원에 직접 나선 끝에 가까스로 그림을 살려냈다.

전시는 크게 4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대학 시절을 비롯해 순천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인 1970-1980년대 작품들이 밀집된 ‘민중의 아리랑’, 1990년대 이후 풍경화 작품 섹션인 ‘바람의 풍경’, 나무와 꽃을 모티브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생의 노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철학이 함축돼 있는 ‘피안의 시간’ 섹션이다.

최근 그는 대작 중심의 철학적인 작업에 몰두해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2019년 안식년 차 다녀온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약 일 년 간 작업한 이후부터였다고 이야기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나 혼자인 외딴 곳에 있으니까 정신적으로 힘들었죠. 거기서도 풍경 자체를 그린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왜냐면 제 작품을 보는 사람도 없고 그걸 발표할 일도 없으니 정말 마음 가는대로 그렸어요. 그러다보니 표현방법이 굉장히 자유스러워졌죠. 송곳으로 긁어서 작업한다든지 목탄으로 그린다든지요. 그때 실험적으로 해본 작품들이 많아요. 요즘 하는 대작들은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이죠.”

그는 최근 작업인 ‘레퀴엠’을 언급하며 초기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우리 생 깊은 곳에서 느끼는 어떤 말 못할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 작품은 레퀴엠, 죽은 자에게 바치는 음악이라는 뜻인데, 존재의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감정들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제 작업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는 민중미술 때부터 최근 삶의 본질을 다룬 신작들까지 전부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같은 주제로 작업할 예정인데, 주제를 더 심화시킬 수 있는 표현 방법을 모색해보려 합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