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524) 까치집 있는 마을 안의 석류꽃이 핀 집이라네

2023년 10월 31일(화) 19:39

有惑(유혹) / 혜환재 이용휴

松林穿盡路三丫 立馬坡邊訪李家(송림천진로삼아 입마파변방이가)
田夫擧鋤東北指 鵲巢村裏露榴花(전부거서동북지 작소촌이노류화)
솔밭 길을 벗어나니 세 갈래 길이어라
언덕에 말 세우고 이처사댁 물었더니
농부는 동북쪽 가리키며 석류꽃핀 집이라네.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상대방은 이를 바르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의혹을 풀지 못하겠다는 심산이리라. 법정에서 고소인과 피고소인은 법관 앞에서 진실을 토로한다. 진실게임의 길목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의혹을 풀기 위한 조처다. 의혹이 잘못 풀리면서 ‘고등법원-대법원’이란 여행의 열차로 갈아탄다. 솔밭 길 벗어나니 길은 세 갈래가 있는데, 언덕가에 말을 세우고 이처사댁을 물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까치집 있는 마을 안의 석류꽃이 핀 집이라네(有惑)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혜환재(惠寰齋) 이용휴(李用休:1708-1782)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실학자다. 그가 조선시대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논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의 8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김택영은 ‘소호당문집’에서 그의 문학 활동을 성만당에 비유하고 있을 정도로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솔밭 길 벗어나니 길은 세 갈래가 있다는데 / 언덕가에 말을 세우고 이 처사댁을 물었더니만 // 농부는 호미를 들고서 동북쪽을 가리키면서 / 까치집 있는 마을 안의 석류꽃이 핀 집이라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그래도 의혹(疑惑)됨은 남아 있고’로 번역된다. 우리 인간은 어쩌면 풀지 못한 아니 풀리지 못한 의혹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원한 대답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심리 속에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학은 시인이 꼭 잡아당겨 결론을 내놓기보다는 아리송한 의문이나 의혹이 있어야 보다 값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하는 사람들의 작품이 더 의혹스러운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은 이처사란 사람의 댁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세 갈래 길이 나오면서 미로(迷路)가 되고 마는 시적인 분위기로 반전한다. 솔밭 길을 벗어나니 길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언덕 가에 말을 세우고 이처사댁을 물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시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길의 선택은 의미가 없다. 알듯 모를 듯 한 점을 찾는 것이다.

화자는 선비가 묻는 말에 농부의 의혹이 남아 해결하지 못한 의혹의 한 점이 있음을 지적해 보인다. 농부는 호미를 들어 동북쪽을 가리키면서, ‘까치집 있는 마을 안의 석류꽃이 핀 집’이라고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비란 화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풀리는 듯, 풀리지 않는 듯해진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松林: 송림. 穿盡: 통과함을 다하다. 벗어나다. 路三丫: 세 갈래 길. ‘丫’ 가장귀. 立馬: 말을 세우다. 坡邊: 언덕 곁에. 訪李家: 이처사댁(이가)을 묻다. // 田夫: 농부. 擧鋤: 호미를 들다. 東北指: 동북을 가리키면서. 鵲巢: 까치집. 村裏: 마을 속. 혹은 마을 안. 露榴花: 석류꽃 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