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처음… “짜장면 배달 왔습니다~” 국내 첫 한센인 정착촌 ‘여수 도성마을’…소록도보다 6년 앞서 3년 전 ‘에그 갤러리’ 문 열어…외지인 유입·장터 등 변화 바람 장은정 인턴기자

2023년 11월 05일(일) 20:33

“짜장면 배달 왔습니다~”

최근 여수 율촌면 도성마을에 50년 만에 처음으로 짜장면이 배달돼 주민들이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제서야…”라는 다소 한탄섞인 말들을 주고 받았다.

짜장면 1그릇, 샌드위치 1개, 커피 한 잔도 배달되는 요즈음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이 마을에서는 실제로 처음 벌어진(?) 일이다.

5일 도성마을 주민 등에 따르면 해당 마을은 국내 최초 한센인 정착촌이다.

1909년 애양원을 중심으로 약 100여년의 한센인 역사를 지닌 도성마을은 고흥 소록도보다 6년 정도 먼저 마을이 형성됐다.

과거 50여년간 외부와 단절한 채 살아야 했던 도성마을 주민들은 3년 전 마을에 문화 공간 ‘에그 갤러리’가 문을 열면서 외지인이 유입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에그 갤러리는 박성태 작가가 조성한 곳으로 마을 입구 쪽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했다.

박 작가는 여수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미술가로 10여년 전 이 마을에 대한 얘기를 들은 이후부터 마을을 지속적으로 방문했으며 3년 전 에그 갤러리를 개관했다. 짜장면 배달도 최근 지역 작가들이 마을을 찾아 40-50인분을 인근 면사무소 근처에서 주문하면서 이뤄졌다.

마을 한 주민은 “몇 년 전만 해도 외지인들이 마을에 와서 밥을 먹고 배달을 시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지역 공무원들조차 마을에서 식사를 할 때면 장갑을 끼고 먹을 정도로 한센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앞서 마을에서는 한센인 최초 장터도 열렸다. 이는 국내 한센인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이인혜 작가의 ‘빗간이 사람들’ 전시 당시 이 작가는 전시회 관람 차 마을에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민들이 생산한 농작물(땅콩, 계란, 파, 깨, 녹두 등)을 판매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고, 이를 통해 외지인과 마을 주민들 간 첫 교류가 시작됐다.

하지만 모두가 장터를 반겼던 건 아니다. 박성태·이인혜 작가 등이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싶은 작물들을 가지고 갤러리 앞으로 오라고 했지만 처음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에 두 작가는 주민들을 설득했고 그 끝에 10여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또 뒤이어 사람들이 더해지면서 장터는 주민들과 외지인들로 북적였다. 일찌감치 완판(?)을 한 주민들은 미참여 주민들에게 직접 참여를 권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은 “외지인이 반갑기도 했지만, 경계하는 마음도 있었다”며 “우리 같은 환자들이 만든 걸 누가 먹겠냐. 누가 사겠냐. 사가더라도 분명 몰래 버릴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는 주민들이 직접 갤러리를 찾아 직접 키운 농작물을 팔고 싶다고 예약까지 하고 있다.

박성태 작가는 “도성마을에 대해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마을 주민들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갤러리가 매개체가 될 수 있겠다 판단했다”며 “문화의 힘이자 역할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오랜기간 외부와의 소통이 없었던 곳이어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며 “행정적 지원 등이 신속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장은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