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월정사로 가는 추억의 선재길 트레킹 / 윤은상

2023년 11월 06일(월) 19:48

윤은상 前 광주교육연수원 총무부장

얼마 전 필자는 상원사에서 월정사에 이르는 선재길 트레킹을 좋아하는 벗들과 함께 하게 됐다.

상원사 입구에는 신영복 교수님이 쓴 표지석에 ‘적멸보궁. 문수성지’라는 글씨가 금빛 낙관 형태로 새겨져 있었다. 번뇌가 사라진다는 제법 가파른 계단을 따라 상원사에 들어섰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해 둔 곳을 말하는데 상원사 뒷산에 적멸보궁이 있었다. 이것은 신라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오래전 단풍이 곱게 물들인 어느 가을에 오대산을 오르면서 이곳을 들렀으나 이번에는 시간에 쫓기어 적멸보궁을 방문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문수전의 각 벽화를 주목하면서 세조와 문수동자에 얽힌 이야기와 마당에 있는 고양이 석상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세조가 말년에 피부병인 욕창을 앓았는데 치료차 오대산을 방문했고 오대천의 맑은 물에 몸을 담그던 차에 지나가는 어느 동자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했다. 등을 다 민 동자승에게 “어디 가서 임금의 옥체에 등을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니, 동자승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져 기뻐했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병이 낫자, 크게 감동해 환궁한 후 화공에게 자신이 본 사라진 문수동자를 그리게 해 상원사에 봉인하게 했다. 훗날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이 그림을 본으로 삼아 문수동자상을 조각해 절에 봉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조가 법당으로 가서 예불을 올리는데 별안간 고양이가 나타나 세조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 앞으로 못 가게 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밖으로 나온 임금은 병사를 풀어 법당주위를 뒤지니 제명의 자객이 발각됐다.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위해 강릉의 논 오백 섬지기를 상원사에 내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묘답’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대웅전은 보이지 않았으나 문수전이 제법 큰 규모로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상원사동종을 볼 수 있었다. 절의 난간에 서서 전개되는 신록을 바라보노라니 속세의 온갖 번뇌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전나무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숲 향기와 피톤치드를 가득 머금은 채 내려왔다. 오대산 탐방지원센터에서 100ｍ쯤 내려가니 선재길 입구표시가 있었고 선재길 트레킹이 시작됐다. 이곳에서 월정사까지 약 10㎞의 거리였다. 내려가는 길이라 더할 나이 없는 좋은 코스였다. 선재길을 따라 내려가는 계곡에는 긴 장마 끝이라 수량이 풍부했다. 시원한 시냇물을 마시면서 발도 담그니 심신의 피로도 사라지는 느낌이다.

숲길을 따라 걸어가니 배를 띄우기도, 정식 다리를 놓기도 애매한 곳에 섶다리를 놓았는데 임시 다리지만 모양이 예뻐 볼거리를 제공해줬다.

초록으로 가득한 숲을 거닐다가 다리를 지날 때면 물을 만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기도 하니 심신이 온통 대자연으로 물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친구와 함께 정다운 얘기 나누며 여유롭게 내려오니 드디어 월정사에 도달았다. 월정사는 오대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재건과 중건을 거듭했다. 월정사팔각구층석탑 상륜부 해체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찰을 관람하고 숲길에 이르니 하늘을 향해 곧게 뻗는 전나무가 1.2㎞까지 이어져 있었다. 500년 수령의 전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옆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어우러져 힐링의 장소로 아주 좋았다. 전나무 숲은 그냥 걸어도 좋지만, 고운 흙을 깔아놓아 맨발로 걷으니 자연에 동화돼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건강해지는 느낌이며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맑은 공기와 신록을 흠뻑 마시며 정겨운 얘기 나누며 걸었던 선재길 트레킹은 정말로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