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의 캔버스산책]색(色)의 탯자리

2023년 11월 12일(일) 19:33

‘마음산책-미니다큐’

세상에 수많은 색이 있다. 나는 가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생각했을 때 너의 색은 무슨 색이야 라는 질문을 한다. 묻는 이유는 없다. 단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색은 무엇일까? 많은 색이 떠오르지만 ‘비취색인가?!’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강줄기와 바다가 만나는 마량 앞바다는 지금도 한 몸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취색이며 최초로 인식된 나의 색이자, 천 년 전 도공들이 품었던 색이다.

그곳에서 영랑의 시를 읽다 보면 누구나 ‘서정의 장소’가 몸속 깊은 곳에 아로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대부분 주옥같은 시들이 자기 집과 주변 산책길에서 나왔으며, 나 또한 유년의 환경 탓인지 모르겠지만 원초적 향수를 색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나의 탯자리고, 일획에서 순도 높은 노랑은 나의 쌈터에서 성찰의 색이 됐다.

‘탯자리’가 색의 근원이요, 발상지라면, ‘쌈터’는 곧 색의 터전이 되는 곳이다. 구름에서 마음으로 가는 여정은 파랑에서 노랑으로 가는 색의 여정과 닮아있다. 하늘이 깊어지면 파랗고 마음이 깊어지면 노랗다. 태초 창조의 파랑은 생명체가 진화해 영적 깨달음의 노란색으로 성장한다.

인간이나 자연계의 모든 대상이 놀라운 힘과 영혼의 색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내가 태어났던 곳에 대한 기억 속 이미지, 정신 속에서 ‘언젠가 품었던 경이로운 감정들’이 마치 거울을 보듯 하나의 색으로 표현된다. 어쩌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보는 색이 더 찬란할지 모른다. 나에겐 삶의 고통 속에서도 날씨보다 마음이 더 따뜻해지는 창작의 탯자리 강진이 있다.<강진에서 화가 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