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옥병에 담다 희뫼 김형규 도예가 요백자 초대전 ‘氷心’…내달 17일까지 무각사 로터스 아트스페이스 최명진 기자

2023년 11월 29일(수) 19:24

희뫼 김형규 도예가가 무각사 로터스 아트스페이스에서 백자 항아리 등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절에 공부하러 들어갔다가 말사에서 도자기 물레하는 걸 보게 됐습니다. 삶이 참 편안해 보이더라고요. 세속적이지 않은 그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희뫼 김형규 도예가는 물레를 접한 당시 순간을 이같이 밝혔다. 그의 호인 희뫼는 흰산, 히말라야를 뜻하는 단어로 부처가 수행한 산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희뫼 김형규 도예가 요백자 초대전 ‘빙심(氷心)’이 다음달 17일까지 무각사 로터스 아트스페이스 제3전시실에서 펼쳐진다.

전시 주제는 ‘일편빙심재옥(一片氷心在玉), 얼음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옥병에 담는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가마 속 그릇은 온도가 높아지면 깨끗한 옥빛처럼 보여요. 창호에 스며든 달빛처럼 눈부시기도 하고요. 자연을 머금은 듯 소박하고 순수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달항아리·푼주(아가리가 넓고 밑이 좁은 그릇)·정병(부처나 보살에 바치는 물병)·합그릇 등 큰 작품 45점을 비롯해 총 100여점의 다양한 백자들을 선보인다.

현재 김 도예가는 장성 삼계면 ‘희뫼도요’에서 국내 가장 큰 가마이자 조선시대 전통가마인 망댕이 7봉으로 작업해오고 있다.

“가마 그리고 흙이 안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대외적으로 공부한 걸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는 가마에서 사용할 흙을 준비해 숙성시키고, 가마를 놓고, 터를 잡는 일을 의미합니다. ”

특히 그의 그릇은 얇으면서도 손톱으로 건드리면 청아한 종소리가 난다. 그릇은 눈에 보이는 무게보다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짐작했던 것보다 살짝 가벼우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릇을 사용하면서 마음이 경쾌하고 즐겁길 바라는 생각이에요. 옛날부터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군더더기 없어야 한단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릇도 그렇지만, 우리 삶도 그런 것 같아요.”

전시장에는 도자기 굽는 과정이 담긴 장면과 28개 폐가마터의 모습 등 사진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

“옛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폐가마터를 살펴보는 게 참 재밌어요. 시간을 뛰어넘어 그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도자기 만드는 일 못지 않게 설렙니다. 도자기 굽을 오른쪽으로 깎았는지, 왼 물레를 찼는지, 도자기를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깎은 것인지 등 흔적들이 저에게는 큰 배움인 거죠.”

전시장 속 수많은 흰색 자기들 중 회색빛이 도는 회백자가 간간히 눈에 띈다.

도자기를 굽는 중 채 마르지 않은 나무를 갖고 불을 떼면 연기가 나오는데, 이러한 그을림을 입혀 회색 빛깔의 오묘한 빛깔을 내는 회백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앞으로 작가는 우리 전통 백자가 일상 속에서도 편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구와 배움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오로지 도자기만 생각하며 지내오고 있습니다. 수행하는 의미로 군더더기 없는 그런 깨끗한 마음을 담은 백자를 만들고 싶어요. 인위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자연스럽고 친근한 그런 그릇으로 다가갔으면 해요.”/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