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폐저울 / 정상미

2023년 12월 03일(일) 19:42

대청도 모래톱에 버려진 저울 하나
오목한 정수리는 파도가 앉기 좋아
켜켜이 소금기 배어 느루 목이 말랐네

빗방울 재는 일은 눈가가 붉어지나
비릿한 상처마저 누가 될까 덜어내고
썰물의 모자에 걸친 제 무게 재고 있네

기울어진 평형추에 진자리 눌러앉아
강마른 어머니 몸 환희 핀 녹의 무게
3킬로 처음의 나를 여태 안고 계시는
(시집 ‘안개의 공식’, 책만드는집, 2023)

[시의 눈]

참, 석달 열흘이나 끌던 장마가 멎었습니다. 바다를 낀 이 ‘모래톱’엔 가전제품 박람회라도 열린 듯 가재도구가 막 떠밀려 쌓였네요. 냉장고, 세탁기, 선풍기, 이런 큰 중고시장은 예전 없었지요. 한데, ‘소금기’ 떼작이 붙은 작은 ‘저울’이 모래톱 끝에 보입니다. 어떤 집 거실에 놓여 청진기 찬 의사 노릇을 묵묵히 한 듯해 보입니다. 무게를 걱정해주던 저울이었군요. 거침없이 쫓겨나온 듯 눈금 정수리엔 ‘빗방울’을 재다말고 흙물에 잠겼습니다. 기울어진 바늘, 그는 누굴 재다 휩쓸렸을까요. 참, 한 아이였군요. 저울 바늘처럼 강마른 어머니가 아이를 보며 걱정을 팔고 있는 듯합니다. 어머니 얼굴엔 구름 같은 긴장이 지나갑니다. 3㎏짜리 건강한 애의 첫울음일 테지만 그에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아니, 아예 저울로 들어가 계시네요. 어머니 말마따나 다 큰 아이가 아니 예요. 봐요, 지금도 3㎏이잖아요. 정상미 시인은 경북 문경에서 나, 202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2022년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첫 책 발간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내면 편력에 쌓인 상처와 고통을 순간의 짧은 위트로 더 깊게 끌어오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