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해라도 모실 수 있어 평생의 한 풀었습니다”

日강제동원 피해자 故 최병연씨 80여년만에 고향으로
영광서 추도식·선산 영면…시민모임 “日 사죄 없어” 규탄

장은정 인턴기자/영광=김동규 기자
2023년 12월 04일(월) 20:57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됐다 희생된 고(故) 최병연씨의 유해가 80여년만인 4일 고향인 영광으로 봉환돼 영면에 들었다(사진 上). 이날 영광에서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의 사죄 없음과 추도식 불참을 강력 규탄했다(사진 下). /장은정 인턴기자

“살아있는 동안 아버지 유해라도 모실 수 있어 평생의 한을 풀었습니다. 어머니 옆에서 이제 두 분이 영면하시기만을 바랄뿐입니다.”

1942년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돼 이듬해 타라와섬(현 키리바시공화국의수도)에서 벌어진 타라와 전투 때 희생된 고(故) 최병연씨의 유해가 80여년만에 고국으로 봉환돼 4일 고향 땅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날 오후 3시30분께 영광군 홍농읍 진덕리의 한 산에서 故 최병연씨의 유가족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잠시 후 도착할 고인의 유해를 기다렸다.

먼저 이곳에 묻힌 故 최병연씨의 부인과 큰아들 자리 옆에는 고인이 들어갈 자리가 마련된 상태였다.

잠시 후 태극기로 감싼 관이 들어섰고, 뚜껑이 열리자 故 최병연씨의 유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개골부터 발가락뼈까지의 유해는 각각 별도 보관된 상태였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뼈들 일부는 부서져 있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들은 밀봉된 뼈를 하나하나씩 꺼낸 뒤 인체의 형상대로 맞춰 나갔는데, 유해의 상태가 온전치 못함에 죄스러움을 드러냈다.

유해가 맞춰진 뒤 하관(下棺)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故 최병연씨의 차남 최금수(81)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최씨는 “먼저 세상을 떠난 형이 아버지를 꼭 선산에 모셔달라 부탁했다”며 “형의 부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아도 돼 꿈만 같고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가족을 떠나게 된 아버지를 대신해 26살의 젊은 나이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고생하신 어머니 옆에 이제라도 아버지가 오셔서 더 이상 바랄게 없다”며 “저승에서 두 분이 다시 만나 꽉 끌어안고 금슬 좋게,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한다”고 소원했다.

故 최병연씨가 고향 땅에 묻히기에 앞서 이날 오후 2시께 영광문화예술의전당에서는 고인의 유해 봉송식과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故 최병연씨의 유해가 발견되기 전까지 생사를 몰라 애태우며 지내오신 유가족분들께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정부는 마지막 한 분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추도식 이전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영광문화예술의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해자인 일본 정부의 추도식 불참을 강력 규탄했다.

시민모임은 “故 최병연씨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성의나 노력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며 “그럼에도 일본은 추모사는커녕 얼굴조차 비주치 않는 반인도적인 행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모임은 “타라와 사망자 1천117명 중 1천116구의 유해가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한국이 먼저 물컵의 반을 채우면 나머지는 일본이 채운다고 장담한 정부 역시 각성하라”고 강조했다.

/장은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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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정 인턴기자/영광=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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