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과의 조우…예술, 본질을 묻고 답하다 G.MAP ‘사랑은 10,000마일’ 특별전 리뷰 비디오 설치작품 ‘안심낙관’ 국내 최초 공개 ‘블루 부처’·‘보이스 복스’·‘네온 TV’ 연작 등 동서양·장르 융합…백남준 예술세계 총망라 최명진 기자

2023년 12월 10일(일) 18:56

‘블루부처’

백남준의 삶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지난달 30일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에서 만난 백남준 특별전은 그가 일생 동안 꿈꿔온 세상을 떠올려볼 수 있게 했다.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로 알려져있는 백남준은 동양과 서양, 음악과 시각예술, 새로운 과학기술과 전통문화 등 상이한 개념과 매체를 한 데 융합함으로써 현대예술의 표현 범위를 무한히 넓힌 선각자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계를 허물고 시공간 제약에서 벗어나 전세계 그리고 우주와의 소통까지도 꿈꾸는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인디언 게이트’는 1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1996년 당시 미국 내 만연한 인디언 인종차별에 주목해 만들어졌다. 문 양 옆은 현대를 상징하는 TV 모니터들로 채워져 있으며 화면에는 인디언과 동서양의 모습들이 번갈아가며 재생된다. 문 위로는 평화를 상징하는 봉황을 설치했다. 전통적 요소와 첨단기술을 융합한 ‘소통의 문’을 나타낸 것이다.

‘인디언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서면 가부좌를 튼 부처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네온사인 불빛이 맞이한다. 시각적으로 화려한 효과를 주는 불빛과 흔들리지 않는 평안한 마음 상태를 추구하는 불교의 사상이 만나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그의 세상이 완성됐다.

백남준과 가장 가까운 예술 동료였던 요셉 보이스와의 추억이 담긴 작품들도 곳곳에 배치돼있다. 그 중 ‘보이스 복스’는 보이스의 다양한 목소리를 아카빙한 기록물 21개로 구성됐다.

두 사람이 서로 잘 알지 못하던 시절 우연히 같이 찍힌 사진부터 공동 작업하는 모습, 공연 실황이 녹음된 LP 레코드 등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 주제와도 맞닿아있는 ‘네온 TV’ 연작 중 ‘Love is 10,000 Miles’는 1950-60년 TV 브라운관 화면에 애정만리(愛情萬里)라는 글씨를 새긴 작품이다. 안쪽 너머로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의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다. 과학기술과 전통, 그리고 매체에 얽매이지 않은 그의 작품세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백남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비디오 설치 작업 중 글자 형태로 제작된 ‘안심낙관’이다.

비디오 설치 작품 ‘안심낙관’을 관람 중인 관람객들의 모습

이 작품은 1996년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몸 왼쪽이 마비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당시 자신의 주치의에게 큰 감명을 받아 만들어졌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낙관적 사고’를 할 것을 유도한 그의 말에 영감을 얻은 것. 총 80대의 모니터에는 백남준이 재활 치료를 받는 모습과 더불어 한국의 전통문화 복장, 창작활동에 적극적인 자세 등이 담겨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수많은 환자들에게 ‘안심낙관’의 자세를 통해 치유의 메시지를 건넨다.

이경호 G.MAP 센터장은 “비디오 예술이라는 제한적인 틀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백남준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며 “인간, 기계, 자연의 공존을 기반으로 한 기술매체 시대 속 그가 추구한 인간성과 폭넓은 예술세계를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31일까지.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