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을 여는 詩]사과의 안쪽 / 김 령 |
| 2023년 12월 10일(일) 1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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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는 시작되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서로 닿는 곳부터 썩는 사과처럼
마음을 어디에 두나
겨울나무의 빈 가지 끝
지나는 새의 부리나 닦고 가도록
바람에나 흔들리며 말라가도록
(시집 ‘어떤 돌은 밤에 웃는다’, 천년의시작, 2019)
[시의 눈]
박스를 열면 올록볼록 스치로폼 뚜껑이 방패처럼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 안에 사과들은 비닐꽃방석에 얌전히 앉혀져 있지요. 그래, 대흥사 천불전의 스님들 같군요. 한 택배차가 울퉁불퉁 시골길을 달려 나옵니다. 무에 그리 바쁜지 차가 갑자기 기우뚱거립니다. 이때다 싶게 사과스님들은 답답한 꽃방석을 굴러나와 나뒹굽니다. 참 야단났네요. 싣고 가던 기사님이 얼른 비닐자루에 사과를 담아 옮깁니다. 허, 그들은 그리웠단듯 그 통에 키스를 합니다. 사과는 마지막 나무의 가지 끝을 비우고 이제 마악 나온 길이니까요. 이미 멀리 떠나왔지만 사과는 새삼 그쪽을 쳐다봅니다. 아직 거기 있었더라면 ‘지나는 새의 부리’를 적시거나 서리 내린 들판의 ‘바람에나 흔들리며’ 천천 햇빛 몇 쪽 마시겠지요. 하면, 씨앗을 남기려 더 마를 날을 기다리기도요. 한데, 그들은 맞닿자 서로 합환하고자 합니다. 아이의 흰 이빨이 붉은 사탕 속에 녹아가듯 말이에요. 아, 추워지면 뒹굴다 돌아가고 싶은 게 사과만이 아닙니다. 아궁이에 피어오르는 불꽃을 보려 사람들은 붉은 사과얼굴로 고향을 찾아갑니다. 마른나무에 걸린 노을처럼 어머니 계신 데는 홀로 타는 빈 사과밭입니다. 이런 겨울 초입, 나도 사과 안쪽의 마음처럼 귀향하고 싶군요. 김령 시인은 전남 고흥에서 나, 2014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당선, 2017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그는 낮아지는 대상의 심상을 일깨우며 단절된 심리 저층에서부터 소통을 시도하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