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외레순 메가 벨트’를 가다 / 김대준
2023년 12월 12일(화) 19:49
김대준 전남개발공사 본부장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의 숨결이 살아있는 나라 덴마크. 늦가을 수도 코펜하겐에는 잦은 비와 세찬 바람을 품은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엄습해 있지만 얼굴 표정마다에 여유가 묻어나고 세련미가 넘쳐난다. 고풍스러움과 동화 같은 아기자기함, 그리고 심플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모던한 이미지가 어우러진 녹색도시가 바로 코펜하겐이다.

‘인어공주’ 동상 너머 도심 앞바다에는 긴 날개를 매단 수 십대의 풍력발전기가 쉼 없이 돌아가고 그런 풍경이 친환경 선도도시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1970년대 석유파동, 1980년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접하면서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끊임없이 시민들 주도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왔다. 코펜하겐은 북유럽의 풍부한 바람을 활용한 풍력발전을 중심으로 에너지전환 정책을 펼쳐 지금은 전체 전력의 8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재생 에너지 전환 속도에 비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코펜하겐 도심 동쪽 아마게르 지역으로 향했다. 한 건물 위로 우뚝 솟은 굴뚝에서 쉴 새 없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세계적 그린스마트 청정도시에 연기 나는 굴뚝이라니 의아한 생각이 든다. 40년 된 낡고 오래된 옛 소각장을 헐고 그 자리에 ‘소각장 겸 열병합발전시설’을 친환경적으로 새롭게 지었다. 매년 40만톤 가량의 폐기물을 소각 처리한다. 최첨단 미세먼지 필터와 고도의 정화기술을 활용해 오염물질의 배출을 거의 제로화 하고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활용해 전기를 만들거나 지역 난방수를 공급한다. 주민친화시설로 만든 ‘발상의 전환’이 대단했다.

코펜하겐은 오는 2025년까지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도시를 표방했다. 화석연료의 신재생에너지 100% 대체, 풍력발전을 이용한 인공에너지 섬 건설, 쓰레기 소각열의 난방 재활용 확대, 자전거를 기반으로 한 모빌리티의 지속적인 확장 등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코펜하겐을 뒤로 하고, ‘외레순 해협’을 가로질러 스웨덴을 잇는 해상교량인 ‘외레순 다리(Oresund Bridge)’를 통해 남부 항구도시 말뫼와 인근 도시 룬드를 찾았다. 해저터널을 통과해 발트해의 망망대해 위에 서 있는 외레순 다리(약 7.8㎞)는 ‘장대교량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복층구조로 부산의 광안대교를 연상시킨다. 2000년 개통해 배로 1시간 이상 걸리던 거리가 자동차를 통해 30분 만에 국경을 넘어 갈 정도로 가까워져 두 도시 간 출·퇴근이 가능하고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다리에 들어서면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북유럽 최고 높이의 ‘터닝토르소’(54층·주상복합빌딩)가 시야에 들어온다. 비틀어진 외부 모양의 독특한 건축디자인으로 유명한데, 쇠퇴하던 항구산업도시 말뫼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마천루가 됐다.

스웨덴 제3의 도시 말뫼는 과거 ‘말뫼의 눈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선업의 쇠락으로 세계 최대 조선소였던 코쿰스 회사 크레인이 울산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던 아픈 사연에서 유래한다. 당시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실업률이 치솟았고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이 도시를 떠나 말뫼는 거의 유령도시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표적 도시재생의 모범도시로 탈바꿈했다. 과거 공장 건물은 개조해 스타트업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옛 조선소 터는 건축모양을 달리한 친환경에너지 주택단지가 조성돼 특색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말뫼시는 고급인력을 꾸준히 공급하기 위해 1998년 말뫼대학을 개교하고 예비사업가들의 기술개발 및 창업을 지원하는 창업인큐베이터를 활성화했다고 한다. 자연스레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고 1인 기업들이 전체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젊고 의욕넘치는 도시로 변모했다.

말뫼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룬드시의 룬드대학 사례도 지방소멸위기에 처한 전남의 현실과 맞물려 눈여겨 볼만 하다. 1666년 설립된 룬드대학은 세계 100대 대학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스웨덴의 명문대학이자 유서깊은 교육기관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룬드시 인구가 10만 정도인데, 룬드대 학생과 교직원을 합쳐 5만에 가까우니 대학 하나가 지역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넝쿨로 감싼 고색창연한 유럽풍의 대학 건물들을 배경으로 늦가을 스산한 운치가 더해지면서 캠퍼스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코펜하겐-말뫼-룬드’는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면서 이제 ‘외레순 메가 벨트’라고 불릴 정도로 국경을 초월해 북유럽을 대표하는 산업 전진기지로 강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이면에는 도전과 혁신의 리더가 있고 난상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 지자체의 과감한 지원,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한 기업과의 활발한 협업 등이 촘촘하게 뒷받침돼 있다.

우리 지역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외레순 메가 벨트의 기적’을 꿈꾸며 다시금 전남이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활력 넘치는 곳으로 비상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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