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의 캔버스산책]저물면서 빛나는 시간

2023년 12월 25일(월) 18:55

순수형태-심연(心淵)

한 해의 끝자리에서 ‘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인가, ‘눈물’인가? 모든 물은 아래로 흐르는 데 마음은 가슴에 있고 눈은 위에 있는데, 어찌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 화업(畵業)의 분기점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거는 기대는 고스란히 전해져 큰 파장으로 다가온다.

잘 살았나 싶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빛과 어둠이 뒤섞여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경계의 시간을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말한다. 언덕 넘어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짐승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뜻으로 조심해야 하는 모호한 시간이다.

군 복무 시절 철책 경계근무 때도 이와 비슷한 BMNT (아침 해상 황혼의 시작), EENT (저녁 해상 황혼의 끝)이라는 말을 쓴다. 적과 아군의 구분이 어려워 내 눈을 의심해야 하는 시간으로 앞뒤 20-30분간은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시간은 그냥 육안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시간이다. 하루 중 가장 변화무쌍한 시간을 사진작가들은 ‘매직 아워’(magic hour)라고도 한다.

낮과 밤의 교차,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색(色)의 향연을 펼쳐지기 때문이다.

시간 또한 짧은 편이기 때문에 작업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일몰 후의 30분은 하루를 열심히 산 모든 사람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마법의 시간이고, 서로가 조용한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밤하늘의 표정을 통해 더 가깝게 다가간다.

매번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가 나의 화업에서는 최고의 ‘매직 아워’의 시간이었다. 올 한해 각자의 현실을 놓아두고 하늘의 색이 열어주는 추상적인 순수함에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자. 지나간 것은 지난 대로 놓고,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은 아직 살아가야만 하겠노라는 분연한 생각을 할 뿐이다.

<대인동에서 화가 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