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이젠 안녕! / 박남기

2024년 01월 04일(목) 19:46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작년 11월 말, 23년의 세월동안 함께 했던 무쏘를 떠나보냈다. 추적추적 초겨울비가 내려 마음을 더욱 시리게 했다. 아직은 시속 160킬로로도 거뜬히 달릴 수 있지만 강제퇴역 대상이다. 경유 5등급 차여서 12월1일부터 4개월간은 광주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운행할 수 없단다. 미국 길에서 만난 1950년대 차처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어서 보살피는 데 최선을 다했었다. 미국에는 1960년대 골동품 차도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골동품 차끼리 모여 축제 겸 전시회를 거창하게 하기도 한다. 내 차를 그러한 차로 만들고 싶어 열심히 수리하며 탔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그리할 수 없다고 하여 떠나보내게 됐다.

수없이 많은 시간들이 스친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사람과 함께 했던 여행들, 부모님 모시고 전국 강연을 다녔던 시간들. 무쏘는 아직 성하지만 아버지는 벌써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더이상 거동을 못하신다.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뵈면 한세상 재미있게 살았다며 그때 이야기를 아직도 하신다.

떠나보내는 자와 떠나야 하는 자, 모두 말이 없다. 아직도 젊은 모습으로 반짝이는 마지막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다. 내 가슴에 너를 심어놓으마. 교수 생활의 대부분을 너와 함께 했구나. 잘 가거라. 또 연이 닿아 어떤 모습으로든 만나자꾸나.”

허전한 마음으로 무쏘를 가져다주고, 새 차를 받아왔다. 1년 전에 신청한 신형 하이브리드 차이다. 무쏘 엔진 성능이 좋기는 하지만 오래된 탓에 조금 걱정이 되고, 서울 등 대도시에는 들어가면 벌금을 내야 해서 최근에는 장거리는 자제했다. 어떤 사람들은 고속도로 달리다가 차가 분해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했다. 새 차를 출고 받은 다음 날부터는 전국 출장지를 내 차로 돌아다녔다. 과거 같았으면 대중교통으로 갔을 곳을 차로 다니다 보니 출고 2주일 만에 1천600킬로를 뛰었다. 스스로 프로불편러를 자처했는데…. 신기함이 좀 줄어들면 다시 대중교통을 사용하리라. 내 편리함이 지구 오염으로 이어지니 지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너무나 편리해지고 신기해진 세상을 보며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요새 세상 못살아본 사람은 귀신도 원이 될 것이다.” 어머니는 톨게이트 지나갈 때 자동으로 통행료가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감탄하셨다. 요새 내가 꼭 그 심정이다. 23년간 탔던 무쏘는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만 달려있는 완전한 아날로그식 차이다. 새 차는 자율주행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서 고속도로를 달릴 때 참으로 편했다.

모든 것은 말로 제어가 가능하고, 차의 대부분 기능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도 있다. 종종 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경고가 뜨면 어디에서든 바로 닫는다. 며칠 전에는 메시지를 보고 원격으로 잠궜는데 차에 타려다 보니 열쇠가 차 안에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원격제어로 차 문을 열었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익숙하지 않은 무쏘를 고향 집에서 락아웃한 적이 있다. 수십킬로 떨어진 읍에 있는 카센터 직원을 불러 거금 들여 차 문 열던 때가 스친다. 폭설이 내린 날, 차로 이동하기 전에 원격 제어기능으로 성에 제거 기능을 작동시켰더니 눈을 치울 필요도 없었다. 지상 주차장만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이제 겨울이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내 무쏘는 이미 폐차되었거나 아니면 어느 허허벌판 폐차장에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종종 그를 생각하기는 하지만 너무나 편리한 신차에 빨리 적응하고 있다. 무쏘처럼 나도 조만간 강제퇴역 대상이다. 내가 떠나고 신임 교수가 오면 내가 새 차의 뛰어난 성능에 빠지듯이 신임교수의 풋풋함 앞에 모두 날 잊으리라. 구관이 명관이라며 나를 기억해줄 사람도 한둘은 있을까? 연령에 의한 차별이라고는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를 갖고 지난 시간과 남은 생을 정리하도록 기회를 주는 제도일 수도 있겠다. 나도 이젠 떠날 준비를 하자. 친구여, 이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