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겨울 속의 봄 / 수필 - 정명희 |
| 2024년 01월 22일(월) 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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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는 나주호를 끼고 있는 장소로 가는 길이 한적하여 우리만의 세상이 되는 듯 착각에 빠졌다. 나주호 옆에 차를 잠시 주차해 놓았다. 눈 덮인 산에 피어오르는 안개를 좀처럼 보지 못했던 풍광에 아들 녀석이나, 남편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함께 함박웃음을 지었다. 야생녹차(野生綠茶)가 자생하는 나주시 다도면(茶道面), 그 안에 물개의 모습인 듯 나주호는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나주호는 바깥세상과 다른 낯선 공간 속으로 빨아들이는 듯했다. 이때를 놓칠 수 없어 멋진 풍경을 보며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우리에게 행운이 따른 것인지 바람 끝은 차가웠으나, 한겨울의 칼바람이 아니라 약간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순록의 무리가 뛰어다닐 것만 같은 공간에서 우리 식구는 한참 하얀 눈을 뭉쳐 눈싸움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볼이 상기되었다.
연말의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눈이 많이 내리는 날씨여서인지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주호가 물개라면 물개의 앞가슴에 자리한 스파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샤워하고 워터락으로 들어갔다. 한겨울인데도 따뜻한 물속에서 물놀이하며 수영할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수영하기에는 더운물이지만 자유형, 배영, 평영, 그리고 접영까지 자유자재로 놀며 몸을 풀고, 여러 시설들을 이용하며 휴식을 취했다. 아들 녀석은 물에 발을 담그니 ‘닥터피시’라는 물고기가 발을 간질간질 물어 겁에 질린 표정이다.
“엄마! 물고기들이 내 발을 꽉 물어 버려.”
“녀석아, 발이 더러운 모양이군.”
“아빠 발에는 더 많이 있는데, 그럼, 아빠는 나보다 더 더러운 거야?”
모두 하하 웃었다. 그리고 아들은 우리 부부 손을 잡고 노천탕에 가자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깨끗한 시설이 있다니. 영화관에 들어선 듯 조심조심 걸어갔다. 새삼 안과 밖의 공기가 달라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마치 구름이 펼쳐지는 듯했다. 여러 곳을 여행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노천탕의 묘미는 겨울이 제맛인 것 같다. 겨울 속에서 내 가슴은 진달래꽃이 펑펑 터졌다. 새삼 봄을 느낄 수 있었다. 피부에 닿는 차가운 느낌의 하얀 눈은 너무 상쾌하여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눈보라 속에서 나주호의 모든 것이 닫혀 버린 듯한 착각 속에 빠졌다. 그럼에도 다시 세상은 신비한 마술같이 환한 빛으로 펼쳐졌다.
건너편 야외놀이 시설을 보니 휑한 나무들 같다. 겨울이라 야외놀이 시설을 이용하지 못해 서운했다. 하지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겨울 속에 봄을 담았으니 이만하면 행복하지 않나 감사하며 살아야지, 눈 앞에 펼쳐지는 다도 나주호의 풍경을 바라보며 올 한해도 잘 마무리 지어야겠다.
스파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다 나오니 더 많은 눈이 내려 있다. 집으로 돌아갈 길, 걱정이 태산 같았다. 남편은 걱정 말고 자기만 믿으라고 한다. 좋다 언제나 멋진 당신 믿을게요. 달리는 차 밖은 오묘하였다. 어둠 속에도 세상은 목련꽃으로 등불을 켜고 있었다. 내 가슴도 겨울 속에서 봄꽃들이 만발하였다.
<정명희 약력>
▲한국수필 신인상, 동서문학상 동시부문 수상
▲광주전남 아동문학상, 광주전남 아동문학인회 올해의 작품상
▲수필집 : ‘삼월에 추는 눈의 왈츠’
▲동시집 : ‘병아리 한 마리 키우고 싶다’
▲그림책 : ‘빼앗긴 두 발 자전거’ 외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