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김선기

2024년 01월 29일(월) 19:58

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의 ‘서시(序詩)’ 일부다. 2024년 첫 들머리에 딱 어울리는 시다.

‘서시’는 1948년 1월30일에 나온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첫 장에 수록됐다. 윤동주가 해방을 여섯 달 앞두고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8세의 나이로 순국했으니, 시집 출간은 시인이 죽은 지 3년 만의 일이다.

흔히 ‘서시(序詩)’는 윤동주뿐 아니라, 많은 시인이 자신의 역사관이나 사회관, 그리고 문학관이나 인생관을 집약하여 쓴 작품이다. 그래서 시인들의 ‘서시’는 다른 작품보다 문학적 의미가 깊고 크다.

새해를 맞아 윤동주의 ‘서시’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읽어 본다. 이 시를 관통하는 시적 정서는 ‘부끄러움’이다. 그 ‘부끄러움’을 시인은 세 가지 층위에서 말하고 있다. 하나는 하늘이 날 봤을 때의 부끄러움이요, 땅의 사람이 나를 보았을 때의 부끄러움, 마지막은 자연이 나를 보았을 때의 부끄럼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하늘과 땅과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 사상에 기대어 태평성대를 꿈꿔왔다. 천지인의 석 삼(三)자를 수직으로 이으면 왕(王)자가 된다. 하늘과 땅, 인간의 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곧 왕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임금 왕(王) 자에서 하늘(一)을 걷어 내면 흙(土)만 남는다. 즉, 땅과 사람만을 지배해서 권좌에 오른 자는 진정한 왕이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늘날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만 사로잡으면 된다는 위정자들이 득실거린다. 오로지 일반 대중의 인기 영합을 위해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의 목적을 팽개친 채 그야말로 포퓰리즘 정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권력자와 위정자들은 하늘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윤동주의 ‘서시’가 그 길을 일러주고 있다. 시인이 노래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의 원전(原典)은 맹자의 ‘행복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보며 부끄럼 없이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맹자는 말한다.

윤동주의 ‘서시’는 정치적 저항시나 휴머니즘, 또는 종교 시로 읽힐 수 있지만, 전체적인 뜻은 결국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귀결된다. 시인은 우리에게 민족애와 인간애, 우주애를 강조하고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에 상징은 잎새이고, 별은 죽음의 초월이다. 따라서 ‘모든 죽어가는 것’은 현실에서의 괴로움이며 ‘별을 노래하는 것’은 이상과 꿈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마음속 심리적인 부끄러움이나 괴로움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극복하라고 길을 안내한다.

그동안 우리는 윤동주의 ‘서시’를 읽으면서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뒤에 생략된 서술적 시제에 대한 의문이다. 문법 구조상 반드시 서술어가 와야 한다. 시인은 ‘맹세했다, 맹세한다. 맹세할 것이다’ 등의 서술적 시제를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그리고 과거·현재·미래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다’란 답을 우리에게 스스로 찾게 했다.

2024년은 갑진년이다. 전 국민에게 값진 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권력자는 두말할 나위 없거니와 위정자들은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 한 점 부끄럼 없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리고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모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한 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