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의 그늘…아파트 경비원이 사라진다 광주 서구 한 아파트 업체 변경…기존 14명 중 3명만 고용 경비 업무 아닌 관리인…“고용 승계 명시 분위기 확산돼야” 정은솔 수습기자

2024년 01월 29일(월) 20:35

29일 오전 광주 서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 출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오가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조용함을 깨는 것은 단지를 순찰 중인 오토바이 소리 뿐. 오토바이에는 검정 제복을 입은 젊은 경비원이 타고 있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7월부터 경비용역업체가 변경돼 대기업 계열사에서 경비 및 보안 업무를 맡고 있다. 기존 경비원은 아파트 관리인으로 근무 중이다.

최근 이곳처럼 아파트 단지 경비용역업체를 대기업 경비보안업체로 변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업체 변경은 주로 주민들 의견 수렴을 거쳐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한다.

경비용역업체 변경 시 가장 큰 문제는 기존 경비원들의 고용 유지 여부다.

업체 변경은 기존 업체와 비슷한 규모로 바뀌는 사례는 거의 없고 대기업 경비보안업체로 경비 업무가 이전되는 경우가 많아 기존 인원이 감축되거나 심하면 전원 계약 만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2년 광주시 비정규직지원센터에서 아파트 경비업 근로자 1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용역 업체 변경 시 근로자의 고용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고용이 감축됐다”고 답했다.

실제 이 아파트도 용역업체 변경 전에는 아파트 곳곳에 있는 7개 초소에서 24시간 격일제로 14명이 근무했지만, 현재는 절반인 7명만이 근무 중이다. 이마저도 새로 채용한 인원이 4명으로 기존 근무자 14명 중 고용이 유지된 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

계약이 만료됐기 때문에 이후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합법’이지만 용역업체가 바뀌지 않았다면 기존 경비원들이 일을 계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용역업체 변경 통보는 기존 경비원에게는 사실상 ‘해고 통보’와 같다.

이와 함께 용역 업체 변경 시 주민들과 입주자대표회의간 갈등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아파트 역시 경비용역업체 변경 의견에 대해 노인회 등이 기존 경비원의 감축을 우려해 반대를 했고 기존 업체를 유지하라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지만 최종 결정 권한은 입주자대표회의에 있었다.

해당 아파트 관리인으로 근무 중인 김모(67)씨는 “전에는 경비원이었고 이제는 관리인이 됐는데 관리인은 아파트 내 모든 잡무를 해야 한다”며 “그나마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올해 5월이 계약 만료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고 우려했다.

주민들 반응도 엇갈린다.

입주민 손모(30대·여)씨는 “아파트 주민 투표를 통해 업체 변경이 부결됐는데 결국 바뀌었다”며 “인사하고 지내던 경비 아저씨가 그만두게 됐는데 이게 맞는지 의문이 들고 씁쓸하다”고 말했다.

112동에 거주하는 정모(40대)씨는 “인원이 감축 된 건 안타깝지만 주차 문제가 해결됐다”며 “바뀐 업체가 스티커를 붙이는 등 철저히 관리해 주차 문제가 해소돼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정찬호 광주시비정규직센터장은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을 직고용한다면 일자리가 보장되지만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사례가 많지 않다”며 “용역 변경 시 고용 승계 의무를 명시해 계약을 체결하는 분위기가 확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은솔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