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자와 어머니 / 박남기 |
| 2024년 01월 31일(수) 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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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죽을 먹여 드리다가 문득 맛있게 이유식을 받아먹던 손자 생각이 났다. 손자와 어머니가 놓인 상황에서 가장 큰 차이는 뭘까? 돌봐줄 엄마 존재 여부이리라. 최고 학위까지 받은 딸은 육아휴직을 하고서 아이 돌보는 데 전념하고 있다. 집도, 삶도 우선순위는 모두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아이 수면 시간, 식사 시간, 노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주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다. 매일매일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행여 불편하지 않을까, 아프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심지어 야채를 사다가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주고 있다. 하나하나 무게까지 재가며 임금님께 진상할 수라상 준비하는 것보다 더 정성을 들여 새벽까지 만든다. 손자에게는 이처럼 종일 곁에 있으면서 사랑으로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같이 놀아도 주는 엄마가 있다. 그런데 아이보다 손을 더 많이 필요한 내 어머니 곁에는 그런 엄마가 없다.
내 어머니는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그 시절 대부분 그러했듯이 가난해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일만 하다가, 열여섯 살 시집가는 날 처음 본 남편을 따라 먼 길을 걸어서 시집으로 왔다. 너무 힘들어 보따리를 싸놓고 도망가려했지만, 어려서부터 살던 집과 바로 옆 동네 이외에는 멀리 가본 적이 없어서 결국 포기했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너무나 보고 싶어 했지만 시어머니 때문에 몇 년간 만나지도 못한 채 살아야 했다.
나만 따스하고 인자한 어머니가 있는 줄 알았더니 내 어머니도 그런 어머니가 있었음을 어려서 외할머니댁에 가서 알게 됐다. 애타게 그리워하던 외할머니가 일찍 세상을 뜨자, 시댁 눈치 보느라 모시고 여행 한 번 같이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외할머니에게는 내 어머니도 눈에 넣어 아프지 않은 고운 외동딸이었다. 만일 외할머니가 젊은 엄마 모습으로 내 어머니 곁에 와계신다면, 매일 가슴 아파하면서 눈물 바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리라. 어머니가 누워계신 병실에는 그러한 고운 딸들이 늙어버린 몸뚱이에 갇혀, 거의 버려진 채 마지막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삶의 모든 것을 자신에 맞춰주는 자신의 엄마들이 곁을 지키고 있다면, 어쩌다가 한 번씩 그것도 잠깐만 보이고 사라지는 자식들은 그냥 덤이기에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으리라.
한 부모가 열 자식은 돌볼 수 있어도, 열 자식이 한 부모는 못 모시는 것이라는 말씀을 늘 하셨다. 우리는 내 자식을 위해 쏟는 정성과 사랑 이상으로 내 부모도 나를 돌보았음을 깨닫지 못한다. 내 자식이 아프다고 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내 부모가 아프다고 하면 머리가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일까? 과거와 달리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모셔야 하는 자녀도 함께 늙어간다. 부모가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면,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는 요양원으로 보내게 된다. 우리 모두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그리도 사랑하며 원하는 것을 모두 채워주던 엄마를 그리워하며, 혼자서 외롭게 길을 나서게 되리라. 산짐승이 홀로 숨어 웅크린 채 고독하게 생을 마감하듯이 말이다. 모든 것을 내어주신 내 엄마의 마지막 길이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자주 뵈어야겠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몰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