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근로계약서 의무화 16년’…정착 ‘미진’ 市교육청 등 실태조사…“청소년 10명 중 4명만 작성”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위반 땐 사업주 형사처벌 가능” 정은솔 기자

2024년 02월 15일(목) 20:15

사진=아이클릭아트

#용돈 마련을 위해 PC방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A(18)군은 미성년자라 합격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우려와 달리 면접 후 바로 “내일부터 일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온 A군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에 A군은 다음 날 출근해 사업주에게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해고 통지’였다.

#방과 후나 주말에 틈틈이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B(18)양은 근무 시작 당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수 개월째 원본을 받지 못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등 답답한 마음에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상담을 받은 B양은 사본을 받으라는 조언을 얻었지만,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 걱정에 아직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미성년자 채용 시 근로계약서 작성과 교부를 의무화 하는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16년여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착은 미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광주시교육청과 광주시 청소년노동인권센터 등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제67조 3항이 지난 2008년 1월28일 시행되면서 사업주는 미성년자를 채용할 시 성인과 마찬가지로 근로계약서를 작성, 교부해야 한다.

근로계약서는 임금, 근무 시간 등 근로 조건을 기록한 것으로 노동 관련 분쟁 발생 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된다.

또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의 권리 보호를 위한 것인 만큼 근로기준법에 의해 2부를 작성, 1부씩 나눠 가져야 한다.

그러나 교육기관 등이 실시한 실태조사 설문 결과를 보면, 현장에선 해당 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광주시교육청과 광주시 청소년노동인권센터가 지난해 6월12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관내 중·고등학생, 학교 밖 청소년 4천2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청소년 노동인권 의식 및 실태조사’에 의하면 ‘근로를 시작할 때 계약서 2장을 작성해 1장은 노동자에게 줘야 한다’는 내용을 아는 응답자는 55.8%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근로계약서 작성 후 1부를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1.9%로 절반에 미치지도 못했다. 미작성이 33.3%로 그 뒤를 이었으며 작성 후 미교부는 14%, 구두로 근로조건 설명을 들은 사례는 10.8%로 집계됐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유는 ‘고용주가 작성하자고 하지 않아서’가 56.1%로 가장 높았다.

이 같은 실태에 대해 이승희 광주 청소년노동인권센터장은 “근로계약서 작성은 사업주의 의무임에도 청소년 근로자에게 유독 예외인 경우가 많다”며 “청소년이라고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말고 근로기준법에 따라 지켜야 할 것들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근로계약서 미교부 사업장은 임금 체불 등 다른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분쟁 조정 과정 중 계약서와 관련해서는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근로계약서 미교부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만큼 최저임금 위반처럼 강력하게 처벌하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근로계약서 미작성’ 및 ‘작성 후 미교부’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의해 최대 500만원의 벌금 또는 과태료가 부과된다./정은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