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들이라면 어땠을까? / 조윤정
2024년 02월 20일(화) 19:54
조윤정 여성비전네트워크 이사장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버릇없고, 안하무인일 거 같지만 내 보기엔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윗세대들보다 ‘사회 인지 감수성’이 높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조심조심조심’을 많이 듣고 자란 세대다. 유치원에서 서로 싸우면 중간에 바로 저지를 받았고, 놀다 얼굴에 손톱자국 하나만 생겨도 CCTV확인에, 쌍방 간 민원에, 어른 싸움으로 복잡해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세대다. 남·여 각각 성인지 교육을 꾸준히 받았고, 타인이 함부로 주는 음식 받아먹으면 안 되고, 잘 해준다고 따라가면 안 되고, 남에게 어설프게 간섭하면 안 된다는 걸 교육으로 받은 세대다.

때문에 필자는 젊은 세대들이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남 의식 많이 하는 세대, 조심이 몸에 밴 세대’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가끔 해본다. 공중도덕도 아마 조부모 혹은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지킬 거다. 당장 우리 집 애들만 보더라도, 음식주문하고, 종업원 대할 때 보면 상당히 매너가 좋다. 이는 다른 집 애들도 마찬가지다. ‘상호 존중’이 몸에 배어있다. 또한 그 반대급부로 자신들도 존중받길 원한다. 본인이 학생이든, 알바생이든, 손님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서로 간 존대, 서로 간 깍듯, 서로 선 넘지 않기’가 그들 내면의 기본 값이다.

시쳇말로, 100년 전, 50년 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볼 법한 ‘야성’ ‘객기’ 또는 ‘거드름’, ‘거침’, ‘욱하기’, 이런 것들이 요즘 애들에겐 그닥 없다. 이유는 조금만 세게 말하거나 거칠게 행동할 경우, 자신의 미래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인간의 본능은 이처럼 환경에 의해 길들여질 수 있다’로 해석해야할까? 아니면 ‘인간은 학습과 교육, 양육방식과 태도에 의해 자기통제, 자기조절이 가능한 존재다’라고 해석해야 할까?

얼마 전 카이스트에서 동료 졸업생이 끌려 나가는 것을 두고, 다수의 학생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유심히 봤다. 개인적으로 조금 안타까웠다. 특히 교수들 중 누구 하나도 꿈쩍 않고 앉아있는 건 좀 충격이었다. “저들도 집에선 아버지일건데? 자기 자식이 저리 끌려가도 쳐다만 보고 있었을까?” 여러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가만 앉아있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들에겐 내 입장이 좀 더 관대해졌다. “니들은 피 끓은 동료애도 없냐?” 보다는, “아! 이거, 예측할 수 있던 거다, 그럴 수 있었겠다.”라는 안타까운 공감의 시선이 먼저 들었다. 이렇게 추측해 볼 순 있을 거 같다. 그 자리에 있던 그들은 그와 같은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다. 그래서 평소 하던 대로, 관성대로 그 자리에 얌전히 있었던 거다. 어릴 때 유치원 재롱 행사 때 부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하는 거야, 남 일엔 함부로 끼어 드는 거 아니야.” 이게 그들의 몸에 배인 문화인거다.

그럼 그들 가슴에는 피 끓는 동료애가 아예 없었던걸까? 어찌 밑바닥 인류애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 윗세대와 굳이 차이를 들자면,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본 ‘집단 경험’이 없었던 거다. 학교 다니며 공부하느라, 스펙 쌓느라 바쁘고! 친구들은 친구이기도 하지만, 한 문제로 등급이 갈리는 경쟁자이기도 한 그들! 친구들과 피씨방 게임 같이 하기, 영화같이 보기, 편의점에서 컵라면 같이 먹기, 인스타그램에 올릴 동영상 서로 찍어주기! 어쩌면 그들에게 동료, 친구, 선후배는 딱 그 정도의 ‘연결성’, ‘관계성’ 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동료들과 생사를 같이 할 부대낌, 땀흘리며 종일 뛰놀던 기억, 자기 도시락을 양보한 경험, 친구 도시락으로 배를 채워본 경험, 동네 형들과 어울려 다니며 병을 주워다 엿 바꿔먹던 그런 경험 자체가 없는 세대이다.

인간의 본성은 천 년 전이나,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인간본성은 사실 진화의 영역이 아니다. 단지 사회화될 뿐이다. 불의가 있는 곳에 정의가 있고, 악함이 있는 곳에 선함이 있다. 또 이기심이 있는 곳에 이타심이, 시기질투가 있는 곳에 존경심이, 고통이 있는 곳에 측은지심이, 폭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카이스트에서 동료가 끌려가도 멍하니 보고 있던 다수의 어른 교수들과 학생들. 그 모습은 어쩌면 이 시대의 단면이다. ‘개인화된 시대, 각자도생의 시대, 타인의 삶에 관여하기가 주저되는 관망의 시대, 소리치고 저항해야 할 때도 침묵을 선택하는 지성의 시대’. 우리 사회에, 우리 자신에, 우리 자녀에, 던져볼 만한 주제다. “나라면 어땠을까?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내 아이들이라면 어땠을까?” 우리 모두에게 질문 던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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