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지연·수술 연기·전원 속출…“왜 환자들이 고통받나” ●광주·전남도 결국 의료대란 현실화 전대·조대병원 전공의 300여명 무단결근…접수처 등 북적 복지부, 321명에 ‘업무개시명령’ 발동 미복귀시 고발 방침 기수희·정은솔·박현진 기자

2024년 02월 20일(화) 20:27

진료 접수로 붐비는 병원 병원에서 응급·당직 체계의 핵심을 맡는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20일 전남대병원에서 시민들이 진료 접수를 하고 있다./김애리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광주·전남 주요 병원 전공의 300여명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한 데 이어, 무단 결근하면서 의료 대란 우려가 결국 현실화됐다.

각급 병원들은 대체 인력을 투입하며 대응할 계획이지만 전공의 무단 결근이 장기화할 경우 진료 공백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예상돼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비상 체제 가동 “공백 최소화”
20일 전남대·조선대병원 등에 따르면 전날부터 전남대병원 전공의 319명 중 245명(인턴 75명, 레지던트 170명)과 조선대병원 전공의 142명 중 104명(레지던트 77명, 인턴 31명)이 각각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 대다수는 이날 출근하지 않고 있다.

이에 전남대병원은 윤경철 진료부원장을 위원장으로 한 20명 규모의 비상진료대책위원회를 구성, 진료 공백에 대처하고 있다.

비대위는 외래, 입원, 응급실, 중환자실 등의 진료를 최대한 현상 유지하고 교수, 펠로우,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등 대체 인력을 투입해 전공의 공백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수술은 응급 및 중증도가 높은 수술 위주로 운영하되 일반 수술에 대해서는 진료과별 자체적으로 일정을 조정할 예정이다.

조선대병원도 외래 진료를 정상 운영하는 대신, 수술은 축소할 계획이다. 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대해 교수·전임의로 당직 체계를 꾸리는 등 비상진료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진료 여부 확인 분주 ‘전전긍긍’
하지만 평상시 대비 진료 대기가 1시간 가량 지연되는가 하면, 조기 퇴원, 전원 조치 등 전공의 무단 결근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되고 있다.

실제 이날 오전 8시30분께 찾은 전남대병원은 진료가 시작되기 전부터 일찍 발걸음을 한 환자들과 보호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환자들은 접수 이후에도 원무과를 다시 찾아 “오늘 진료를 볼 수 있는 게 확실하냐”고 되묻는 등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진료가 시작된 이후 일부 과의 경우 예상 시간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환자들의 불편은 커졌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는 남편과 함께 장성에서 왔다는 김순애(71·여)씨는 “예약 시간보다 30분 늦어졌다”며 “의사들의 사직 등으로 진료가 어려울 것 같으면 최소한 미리 말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선대병원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예정보다 조기 퇴원하는 환자들도 눈에 띄었다.

늑막염으로 2주 동안 입원 치료를 했다는 류모(41·여)씨는 “다음 주 퇴원 예정이었는데 병원에서 오늘 퇴원하라고 했다”며 “같은 병실을 썼던 다른 환자들도 조기 퇴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수술 일정이 당초 예정보다 밀리다 못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 진료받을 것을 권유받았다는 환자도 있었다.

정형외과 수술을 위해 미리 입원한 최모(35)씨는 “이달 중순에 받기로 한 수술이 한 차례 밀려 아직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오늘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전원할 병원에 입원실이 없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녀야 할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와 관련, 병원들은 원내 곳곳에 ‘전공의 업무 공백으로 인해 외래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고 수술 차질이 예상되니 환자 및 보호자의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을 부착했다.

◇지자체·소방당국 등 예의주시
전남대병원 본원과 조선대병원이 위치한 광주 동구는 물론, 나머지 4개 자치구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설 명절 때부터 감지됐던 의료계의 집단행동 조짐에 대비하기 위해 각 자치구 별로 가동한 비상진료대책상황실은 상황 종료까지 24시간 유지되며 응급 의료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날 현재까진 광주·전남에서 환자를 제때 이송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없었던 걸로 파악된 가운데 소방당국은 전공의 위주로 운영되는 응급실에서의 의료 공백 발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환자 중증도에 따라 일반 병원으로의 분산 이송 조치 등을 자구책으로 마련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전 전남대·조선대병원에 현장점검반을 파견, 전공의 근태를 확인한 뒤 이탈한 321명에 대해 업무개시(복귀)명령을 발동했다. 업무개시 명령서는 개별 문자메시지로 전송했다.

현장점검반은 21일까지 병원에서 복무 점검을 이어가며 전공의들의 복귀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며 미복귀자에 대해 불이행확인서를 발부하고 추가로 강제이행명령도 내릴 방침이다. 강제이행명령에도 병원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불이행확인서 증명 내용을 토대로 고발 조치할 방침이다.

/기수희·정은솔·박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