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542) 타는 불 속 거미집에 고기가 차를 달이네 |
| 2024년 03월 06일(수) 19:46 |
|
海低燕巢鹿抱卵 火中蛛室魚煎茶(해저연소녹포란 화중주실어전다)
此家消息誰能識 白雲西飛月東走(차가소식수능식 백운서비월동주)
바다 밑의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속 거미집에 고기가 차를 달여
소식을 알 수 있으랴 동쪽으로 달이 가네.
효봉선사 오도송은 명문이지만, 열반을 직전에 읊었던 열반송(曉峰禪師涅槃頌)은 은은한 산사 뒤뜰을 맴돌았다. 오설일체법 도시조변무(吾說一切法 都是早騈拇) / 약문금일사 월인어천강(若問今日事 月印於千江)을 되뇌었다. ‘내가 말한 모든 법, 모두 군더더기일 뿐 // 오늘 일을 묻는 것인가, 달이 천강에 비치나니’ 이 집안의 소식을 그 뉘라서 능히 알 수 있으랴 / 흰구름 서쪽으로 날고, 달은 동쪽으로 달린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타는 불 속 거미집에서 고기가 차 달이네’(悟道頌)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효봉선사(曉峰禪師:1888-1966)로 현대의 고승이다. 일명 학눌(學訥)로 현대의 고승으로 정혜쌍수(定慧雙修)에 대한 구도관을 확립했다. 통합종단 초대 종정을 지냈으며, 평소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제자들을 엄하게 가르쳐 문하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바다 밑의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 타는 불 속 거미집에는 고기가 차를 달이네 // 이 집안의 소식을 그 뉘라서 능히 알수 있으랴 / 흰 구름 서쪽으로 날고, 달은 동쪽으로 달리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悟道頌·사슴이 알을 품는 소식’으로 번역된다. 일제 치하 평양의 판사출신 승려 효봉의 오도송이다. 시어가 매우 상징적이다. 효봉이 오도를 하고 이 게송을 지은 시점은 서구사회에서는 아방가르드가 유행했다. 그래서 지식인이었던 효봉이 서구의 모더니즘을 모방한 것일까. 아니겠다. 엄격하게 말하면 선사들은 이미 천 년 전부터 문화의 최첨단에 서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언어는 초현실적이었으며 극단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시인은 이러한 현대적인 사상 때문에 늘 개방돼 있었을 불교의 송을 세계화와 접목하려는 은근한 태도를 엿보인 시상이리라. 바다 밑의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 속에 거미집에는 고기가 차를 달인다고 했다. 고기가 차를 달인다는 표현은 극치의 비유법이겠다.
화자는 바다 밑의 제비집안의 소식이 매우 궁금했음을 알게 하는 시주머니를 털어낸다. 이 집안의 소식을 그 뉘라서 능히 알 수가 있으랴, 흰 구름은 서쪽으로 날고 달은 동쪽으로 달리고 있다고 했다. 비유법 덩치로 치장해 놓은 이 시상의 멋이 자르르하게 들리는 듯하여 긴장감을 더한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海低: 바다 밑. 燕巢: 제비집. 鹿: 사슴. 抱卵: 알을 품다. 火中: 타는 불 속. 蛛室: 거미집. 魚煎茶: 고기가 차를 달이다. // 此家: 이 집안, 消息: (궁금한) 소식. 誰能識: 누가 능히 알겠는가. 白雲: 흰 구름. 西飛: 서쪽으로 날다. 月: 달. 東走: 동쪽으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