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어머니가 그립다 / 류미숙 |
| 2024년 03월 07일(목) 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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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어머니는 쉴 참이 없었다. 애오라지 엎디어 일만 했다. 일 구덕에 파묻혀 지냈다. 생을 놓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래서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 헌신했었던 분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에 남은 가족들은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 그리움을 모아 작업에 몰입했다. 내가 수년간 해온 ‘엄마의 밥상’이 그것이다. 그리움을 뿌리로 해 작업의 넝쿨을 짜며 어머니와 만났다. 너무 기쁜 나날이었다.
어머니는 50여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다. 어머니의 물건을 정리하며 식당에서 사용하던 그릇과 부엌살림들을 앞에 놓고 한없이 울었다. 남들이 보기엔 헌 그릇이나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그릇을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쌓아둔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몇날 몇일을 웅크리고 앉아 쳐다보았다. 그 그릇 속에 어머니의 이야기가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나씩 끄집어내기로 했다. 표현은 바로 그 그릇에다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엄마의 밥상’이 탄생했다.
접시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건 바램이고 희망이었을 뿐 쉽지 않았다. 그릇에 그림을 그리려니 참으로 난감했다. 물감이 그릇에 먹히지도 않았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사포로 수없이 문질러 표면을 거칠하게 한 뒤에야 물감이 스며들었다. 요령이 없어서 힘으로 빡빡 문질렀다. 나중에 스킬을 익혀서 처음보다는 수월하게 했지만 초기엔 고난도의 과정을 어렵사리 거쳐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끊임없는 연구를 거쳐 그림이 그릇 위에 앉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흔적이 그릇에 옮겨졌다. 어머니가 수 십년간 쓰던 그릇에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생각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즐거움과 환희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들이 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지난 5년간 수많은 초대전, 기획전,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개인전만 해도 1년에 네 차례, 4년 동안 모두 열두번의 전시를 감당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적잖이 호평을 받았다. 너무 신났다. 이 모든 게 어머니가 내게 주신 선물이다. 살아서도 모든 것을 주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도 또 내 작업의 근본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제까지는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어머니를 보듬고 그릇에다 캔버스에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재현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행복, 추억, 꿈들을 접시 위에 간절히 표현 해왔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나, 류미숙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 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거 같다. 해서 고민이다. 아직은 어머니 이야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될 거 같다. 현재는 지속적으로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작품 주제에 대한 고민, 표현에 대한 생각, 재료 선택의 판단에 시간이 아주 많이 소비될 것 같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하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작업을 하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정답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아예 떠나보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곡에다 나의 이야기를 덧붙일 거다. 어머니는 영원히 나의 그리움으로 남아있기에. 어머니와 나의 이야기가 펼쳐질 날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