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역전 국밥 / 김귀례

2024년 03월 24일(일) 18:58

새벽바람을 이고
남광주역에서 하차하는 푸성귀들을 위해
언 손 녹여 주는 골목이 있지
순대국밥처럼 위로받는
노점 좌판대 같은 사람들
가로등 없는 고샅길에서 만난 첫눈 같은 이들이
내장이 되고 순대가 되고 살코기 몇 점 되어주며
마주 앉은 자리
섞어국밥 같은 사람들이 있지
꽃인 줄 모르면서 들꽃이 되는 사람들
혼자서 밤길 걷는 이에게 향기의 꽃등 밝혀 놓고
투박한 노래 불러주는 이들 있지.
(시집 ‘꽃들은 묻지 않는다’, 시와사람, 2023)

[시의 눈]

새벽 남광주역에 가보셨나요. 아, 펄떡펄떡 거기는 내 삶조차 뜁디다. 오메, 사람의 정이 등거리에 딱 붙어 띠기조차 어렵습디다. 그래 검정 비닐에 이것저것 사 담지요. 여긴 수산물, 야채, 과일 등이 집하되는 곳입니다. 새벽 기차에 실려온 영암·해남의 고구마와 야채, 여수·벌교의 산낙지와 꼬막과 감태, 그리고 완도산 미역과 전복 등 갯벌 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지리산 심마니들의 약초도 있습니다. 한쪽엔 사람들을 맞으러 시장통 속으로 뜨건 국밥이 뭉게김을 쏘아댑니다. 끓는 가마솥은 ‘어서옵쇼’ 주인이라도 되는 양 손님들을 불러들이지요. 그래, 사람들은 스스로 ‘내장, 순대, 살코기’가 됩니다. 그러다 내친김에 밥을 엎어 말아버리듯 ‘섞어국밥’이 되네요. 좌판 둘레로 이리 섞이는 건 추워서만은 아니에요. 허, 들꽃밭에 펄펄 날 듯 이런 봄의 세상도 있구나 싶어서 모여드나 봐요. 김귀례 시인은 광주에서 나 국어교사를 지냈고 2015년 시집 ‘촛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21년 ‘시와사람’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무거운 시대를 지나온 변방의 아픔과 근원적 슬픔에 풍자의 온기를 김처럼 쏘이는 시인이지요.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