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몸의 종일까, 주인일까? / 박남기
2024년 04월 04일(목) 20:00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우리는 몸의 종일까, 주인일까? 어떤 사람은 몸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한다. 그것도 가혹한 주인이라고 한다. 주인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케이크를 먹거나,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면 가차 없이 응징한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최후통첩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혹독한 주인인 몸을 잘 섬겨야 하는 종이라고 한다.

관절과 근육이 있는 몸 일부분을 제외하면 내 의지로 움직이거나 조절할 수 있는 부분도 거의 없다. 심장과 위장을 비롯한 내장도 내 명령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심지어 내 기분마저도 내가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만들어진다. 몸의 각 기관이 잘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러니 우리는 몸이라는 주인님을 잘 섬겨야 하는 종이라는 말이 나온다.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다. 그런데 몸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눈앞의 현상만 보면 그리 보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면 결국 몸을 지속시킬지 여부는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으므로 몸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후 절대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몸은 그 절대자가 원하는 목적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종일뿐이다.

주인이 자신을 너무 함부로 대하거나, 자신의 어려움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을 때, 그리고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않을 때,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래도 안되면 사알짝 속내를 비치는 순한 종이다. “주인님 아무래도 제가 버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인님 제 상황이 나빠져 가고 있습니다. 저를 조금만이라도 돌봐주세요.” 그러한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계속 횡포를 부리면, 몸은 주인 잘못 만난 죄로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공부하느라 너무 무리한 탓에 30대 중반에 백내장이 와서 양쪽 눈을 수술해야 했다. 의술이 좋아진 덕에 했던 공부를 펼치며 행복하게 살아왔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달봉사로 평생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비로운 주인으로서 종의 사정을 헤아려주고, 종을 너무 힘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소설가 김홍신은 「인생 사용 설명서」에서 37년6개월이나 피우던 담배를 끊었던 이야기를 한다. 「죽는 날에도 담배를 입에 물고 죽겠다」는 그의 수필 한 편이 애연가 동호회 사이트에 올라 있을 정도로 애연가 였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탁 끊었다. 그의 스승이 던진 한마디에 정신이 퍼뜩 들었단다. “쥐는 쥐약인 줄 알면 먹지 않는데, 사람은 쥐약인 줄 알면서도 먹는다. 아주 뜨거운 물 잔은 얼른 내려놓으면 되는데, 붙잡고 어쩔 줄 모르니 델 수밖에 없다.” 좋아하던 담배를 끊은 자신이 참 독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김홍신은 이런 말을 남겼다. “독극물을 삼키는 사람이 독하지 어찌 버린 사람이 독하겠습니까?”

주인 잘못 만나 혹사당하고 있는 몸을 측은지심으로 대하면 몸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봉사할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대학도서관이 문을 닫는 명절이 나에게 유일한 휴일이었다. 그리 살던 중에 몸이 너무 지쳤다는 신호를 보내오면 하루를 포기하고 종일 잠을 잔 것이 내가 몸에게 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보상이었다. 어느 날은 점심 무렵에 잠을 잤는데 눈을 떠보니 아직도 점심 무렵이었다. 실컷 잔 것 같은데 겨우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러 참으로 신기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루하고도 한 시간을 죽은 듯이 잔 것이었다. 그래도 버티면서 아직도 나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몸을 위해 가능하면 몸에 좋지 않은 것은 먹지 않고, 시간을 내어 함께 산에도 오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몸에게 주인 행세하는 것도 옳지는 않은 것 같다. 몸은 나와 더불어 험난한 인생길을 함께 해온 도반이었다. 그의 조용한 배려와 격려 덕에 내 길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앞으로는 내 욕심을 줄이고, 그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며, 연이 다하는 날까지 아끼고 의지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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