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 진도에 다시 돌아와 / 하숙자

2024년 04월 25일(목) 19:39

하숙자 진도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진도로 귀환했다. 30여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흐른 뒤다. 진도는 필자에겐 본적지다. 아직 친·인척들이 살고 있다. 해서 부모님은 진도로 발령나길 기대했었다. 그런 바람에 힘입어 진도로 첫 교직 발령이 났고 교직에서의 첫 사랑이 시작됐다. 우리네 농산어촌이 그러했듯 1990년 진도는 무던히도 가난했다. 가정 방문 땐 학생들의 집을 찾아 마을 마을을 방문했다. 버스로 무려 두시간 걸려 가기도 했다. 한 반에 30-40명이 넘는 학생의 집을 3-4일 동안 해결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가정방문이 있는 달의 일요일엔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가정방문을 지속했더랬다.

1990년 당시 진도실고엔 농업과, 축산과, 상업과가 있었다. 상업과 아이들은 매우 우수했고 영리했다. 집안 형편상 취업을 해야 하는 관계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왔기 때문이다. 농·축산과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이들은 늘 일상의 탈출구를 찾았다. 교사들은 대부분 신규였기에 학생들과의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특히 농·축산과에서 미혼여성교사들의 수업시간은 늘상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 보리라는 다짐은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인 후 물거품이 되곤 했다.

신규교사 멘토링제도 없었던 지라 필자와 동료들은 자취방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했고 술이라도 한 잔 들어갈라치면 “민주주의여 만세”를 부르며 객기 부리며 다소나마 잊곤했다. 각자 자취방 부엌은 동료들의 눈물만큼 빈 술병으로 가득 메워져 갔다. 젊은 교사들은 시간이 지나면 별 미련없이 진도를 떠나갔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교직 중반기에 진도 조도고등학교에 근무를 자청했다. 아이들이 버거워 손을 놓고 떠났던 진도실고 첫 사랑들에게 주지 못했던 교사로서의 책무감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휼륭한 선생님은 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대학진학에 도움을 주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간 조도의 아이들은 너무 훌륭했다. 오히려 필자가 치유를 받아야 정도로 심신이 건강하고 자기주도적 학습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헌신적인 담임선생님을 비롯해 모든 선생님들이 밤낮으로 케어한 결과, 14명의 모든 아이들이 서울·광주 국립대를 포함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척척 합격해 진학했다. 도망치듯 떠나왔던 미안함과 마음 속의 짐을 다소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하여 이듬해 가벼운 마음으로 진도를 떠났다.

그리고 24년도 봄, 다시 진도로 돌아왔다. 아직도 가슴에 각인된 진도실고 첫사랑들은 이제 이곳 진도에 뿌리를 내렸고 멋진 중년들이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 없는 미숙한 교사였는데도 그들은 선생님이 왔다고 대대적인 환영 파티를 해주었다. 부끄러웠다. 상처의 치유는 다른 것으로 대처되지 않는 모양이다. 젊은 시절 도망치듯 부랴부랴 떠났다가 조도고등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치유받았다고 여겼던 필자의 생각은 자기방어고 변명일 뿐이었다. 그들을 다시 만나면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진도에 사립학교가 많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중·고등학교는 대부분 사립이다. 그 이유가 뭘까. 섬이지만 교육열이 높은데다 성격도 급했던 진도사람들은 국가에서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역민들이 뜻을 모아 학교를 세워 후진들을 배우게 하여 인재로 성장시키게 했기 때문이다. 교육은 지역 발전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다시 마주한 진도.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진도 교육이 처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현실에 맞게 풀어낼 것인지를 구상해야 한다. 지역이 위축되고 소멸되어가는 이 때 교육을 통해 지역문제를 풀어나갈 토대를 다져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지역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각단지게 플랜을 짤 것이다. 더 이상 진도에 미안한 마음을 가져선 안 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