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선 오는 날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당께” ●병원선 ‘전남 511호’ 타보니 양시원 기자 |
| 2024년 04월 30일(화) 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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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찾은 여수시 화정면 조발도 인근 해양. 조발도에 거주하는 주민 중 최고령인 김양예(87) 할머니를 비롯해 평균 연령 76.2세의 조발도 주민 어르신 14명이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선 ‘전남 511호’에 올라탔다. 인구 수가 32명 뿐인 조발도는 보건소조차 없는 전남 대표 의료 취약지다.
“입술이 닥신닥신 쑤셔. 나이 먹으니까 팔도 무릎도 아프고 감기도 자주 걸려”, “눈물 나는 약은 없소? 바람을 많이 맞으니께 눈이 자꾸 건조하네.”
진료 대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민들은 양은진 간호사에게 병세를 토로하고 셔츠 주머니에서 소화제, 진드기 기피제 등 필요한 약을 손수 적어둔 쪽지를 내보이며 처방을 요청하기도 했다. 파스, 진통제, 후시딘 등 군(郡) 단위 지역만 가더라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상비약이 조발도 주민에게는 최고 인기다.
진료 접수 후 주민들은 각각의 증상과 필요에 맞춰 방사선실, 임상병리실, 내과, 치과, 한방과, 물리치료실에서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마친 후 나오는 주민들 얼굴에는 하나같이 미소가 가득했다.
조발도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이종모(82) 어르신은 “친절한 것은 물론이고, 아플 때 필요한 진료와 약까지 주니 주민들에게 병원선보다 좋은 게 없다”고 환하게 웃었다.
김양예 어르신도 “치과 진료, 피 검사, 물리 치료까지 오늘 다했다. 필요했던 감기, 배탈 약까지 타서 기분이 너무 좋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바다 위의 병원’ 병원선이 전남 도서지역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병원선은 거주지 인근 의료·보건기관이 전무한 무의도(의사가 없는 섬) 주민들의 유일무이한 의료 기관이다.
전남지역 유인도서는 271곳이다. 이 중 보건진료소만 설치된 의료 취약도서가 32곳, 무의도는 무려 135곳에 달한다. 이들 섬 주민들은 도심에선 집 앞 편의점만 가더라도 구할 수 있는 감기약, 소화제 등의 상비약 구매도, 백신 접종 및 건강 검진 등의 간단한 진료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전남도는 섬 주민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해 1971년 병원선 전남 512호를 도입했다. 이어 2003년부터 동·서부권을 511호와 512호 2척으로 나눠 현재까지 순회 진료하고 있다.
연간 160-180일 가량 운항하는 2척의 전남 병원선은 동·서부권 11개 시·군 167개 도서를 누비며 총 9천173명의 주민들에게 진료, 투약, 건강검진, 정신 이동 상담 등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511호는 1만3천578㎞, 512호는 1만4천358㎞를 각각 운항했다. 총 2만232명을 진료하고 3천733명에게는 방사선, 임상병리, 물리치료 등의 서비스도 제공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23년 된 노후 선박을 대신해 새롭게 취항한 전남 511호는 병원선으로는 국내 최대인 390t급으로 섬 지역 응급환자 발생 시 긴급 이송도 가능하다. 511호에는 공중보건의 3명과 간호사 등 의료인력 8명과 선박 운항을 위한 승선원 등 총 17명이 탑승한다.
전남 511호가 관할하는 섬 중 가장 먼 완도 보길도에 순회 진료를 갈 때면 편도로 6시간이 걸린다. 진료를 위해 기본 2박3일, 최대 3박4일까지도 바다 위에서 지내야 한다.
근무 환경이 녹록지 않음에도 이날 만난 병원선 의료진들은 한결같이 만족스러워 했다.
박준호 임상병리사는 “진료가 끝난 후 어르신들이 손을 잡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병원에서 근무할 때보다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가장 큰 버팀목이 된다”고 미소지었다.
서울대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다 입대한 김진영 내과 공보의도 “사실상 가장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고 절실한 섬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슴 벅찰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차병래 전남 511호 선장은 “현재 수심이 얕아 들어가지 못하는 일부 섬 등을 조사해 소외되는 주민이 없도록 진료를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며 “단순한 병원선 역할 뿐만 아니라, 섬 주민들의 친구 역할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양시원 기자
양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