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점점 살만한 세상이 되어간다 오순지 |
| 2024년 05월 19일(일)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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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가 고공행진의 뉴스를 보면 우리 삶이 더 팍팍해지는 게 당연해 보인다. 흉악한 범죄, 양극화와 저출산, 기후 위기에 대해 들으면 더 깜깜해진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에 비해서 나아지는 게 없는걸까?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를 보면 그렇지 않다. 세상은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100년 전 1924년을 생각하면 사람들의 굶주림은 일상적이었다. 한나 로슬링은 70억 인구를 빈곤의 단계로 소득과 삶의 질에 따라 4단계로 나눴다. 1단계 하루 1달러, 1시간 이상 걸어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와야 한다. 평생 같은 음식을 먹고 일상적으로 굶주린다(10억 명). 2단계 하루 4달러, 이제는 자전거를 이용해 30분이면 물을 길어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다. 모든 음식을 직접 기르지 않고 시장에서 사 먹을 수 있으며, 아이들에게 샌들도 사줄 수 있다(30억 명). 3단계 하루 16달러, 이제는 수도가 집안에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전기도 들어온다. 오토바이가 생겨 도심으로 일하러 나갈 수 있으며, 아이들은 고등학교 교육까지 받기도 한다(20억 명). 4단계 하루 32달러, 교육은 12년 넘게 받고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갈 수도 있다. 4단계의 사람들은 1-3단계의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다(10억 명).
200년 전까지 세계 인구의 85%가 1단계의 삶을 살았고, 오늘날에는 다수가 2-3단계에 살고 있다. 20대에 해외 봉사를 다니며 1-3단계의 삶을 봤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큰 차이다. 1단계 미얀마 시골에선 가족은 차려진 밥상을 보고도 내가 먹으면 가족들이 먹을 수 없으니 먹는 것을 망설였다. 아이의 팔이 부러져도 병원에 갈 수가 없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소가 끌어야 할 것 같은 나무 수레를 어린 자식들과 깡마른 엄마가 함께 끈다. 그렇게 왕복 네 시간을 다녀오는 게 더 중요해 아이들은 학교를 빠지기 일쑤였다.
2단계 베트남 시골 마을에선 매일 설탕 양념을 한 감자에 밥을 먹긴 하지만 누구나 초등학교까진 다니고 운이 좋으면 중학교도 갈 수 있다. 상수도는 없어 빗물을 받아 쓰지만, 매일 씻을 수 있다. 정전이 자주 되지만 전기도 들어오긴 했다. 학교 끝난 아이들은 카펫을 만들거나 밭일 등을 했다. 돌봐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거나 부모가 있지만, 형편이 안 돼 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의 생활이었다.
1800년 유럽에서도 아이들은 먹기 위해 10살이 되면 노동을 시작하는 것이 당연했으며, 당시 평균수명은 31세였다. 1966년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인구의 대다수(50%)가 극빈층으로 살아간 것을 생각해 보면, 지난 20년 동안 극빈층의 비중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 2017년 기준 전 세계 극빈층은 9%이고 평균수명은 72세이다. 이렇게 세상은 더 빠르게 나아지고 있다.
또 1948년 전 세계 평균 출산율은 5명이 넘었지만, 너무 많은 아이가 5살 이전에 굶주림과 전쟁으로 죽어 어른이 돼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2명에 불과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5살 이전에 죽는 아동의 비율이 44%였다. 그런데 2016년에는 전 세계 평균 5살 이전 아동 사망 4%에 그친다.
2017년 전 세계 평균 출산율은 2.5명이다. 그 이유는 더 이상 노동력 확보를 위해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니 죽음을 대비해 더 많이 낳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제대로 교육해 키우고자 하는 욕구가 늘어났다.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 1970년에는 65%에 불과한 여학생 비중이 2015년에는 90%까지 올라간다. 세상은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78명인 사실이 걱정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은 점진적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베트남 시골 마을에도 봉사자들의 결연으로 아이 중 대다수가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은 조용히 나아지고 있다. 점진적으로 나아지기 때문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빈곤에 대한 관심은 절대 빈곤층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기후 위기에 대한 꾸준한 실천과 노력이 모여서 탄소 중립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