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고창 ‘여백의 길’ (산수-월평) ‘쉼’이 그리운 우리, 청동기시대로 먼 시간여행 떠나다

2024년 05월 21일(화) 17:01

구릉지에 형성된 커다란 밭에는 고구마 모종을 심어놓았고,또 다른 밭에서는 모종을 심고 있었다. 이곳 구릉지에 자리한 밭은 한 필지가 수 천 평에 달할 만큼 넓다. 넓은 밭에서는 대단위로 양파도 재배된다. 황토색을 띤 밭과 녹색 양파밭이 거대한 조각보처럼 보인다.

‘여백의 길’은 고창군에서도 남쪽내륙에 자리한 성송면, 공음면, 무장면, 대산면 둘레 73㎞, 10개 코스를 걷는 길이다. ‘여백의 길’은 들판과 구릉지를 이루고 있는 들녘을 지나고 소박하게 사는 농촌마을을 잇는 길이다.

‘여백의 길’은 고창군에서도 남쪽내륙에 자리한 성송면, 공음면, 무장면, 대산면 둘레 73㎞, 10개 코스를 걷는 길이다. 네 개 면의 첫 글자를 따서 ‘성공무대길’이라고도 한다. 이 네 개면은 구릉지와 들판이 넓은 농경지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 있는 관광지를 품고 있지도 않다. 여백의 길은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사는 농촌마을과 들녘을 지나는 길이다.

‘여백의 길’이 시작되는 고창군 성송면 산수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작고 한산한 마을에 푸른 나무와 농작물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산수마을회관 앞 공터에 자동차를 주차해 놓고 ‘여백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길을 걸으려는데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없다.

주변을 자세히 보니 아스팔트 도로위에 ‘Y’자 모양의 고로가 그려져 있다. 농로와 마을 진입로를 따라서 외원마을로 향한다. 길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집과 일터를 이어주는 끈이다.

외원마을에 도착했다. 농가 옆 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농작물을 심고 있다. 조용한 외원마을 골목길을 따라 둔덕을 넘는다. 주변의 구릉지와 들판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구릉지는 주로 밭을 이루고 있는데, 농작물을 심기 위해 밭갈이를 해놓아 붉은 황토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대부분의 논은 작년 가을 벼 수확 이후로는 다른 작물을 심지 않았지만, 보리를 심은 논도 종종 눈에 띈다. 내원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내원제라 불리는 조그마한 저수지가 기다리고 있다. 내원마을은 고산에 감싸여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산줄기가 이어지지만 앞쪽에는 구릉지와 들판이 펼쳐진다.

송산마을입구에 자리한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인 느티나무.

송산마을로 들어가는 논가에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느티나무는 마을주민들의 휴식처이자 든든한 의지처가 된다.

오랜 만에 여행길에서 만난 추억의 우리밀밭. 그 푸르름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송산마을 가옥들이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주변 밭에는 갓 심어놓은 고추들이 제법 푸르다. 오랜만에 보는 밀밭이 반갑다. 우리나라 밀 자급률은 2022년 기준 1.3%에 불과하다. 쌀을 제외한 곡류의 식량자급률은 대부분 30%이하이고, 그중에서도 밀은 가장 낮다.

‘여백의 길’은 23번 국도 아래 굴다리를 지나 백토마을로 향한다. 지대가 낮은 들판은 모내기를 기다리는 논들이 자리하고, 들판 위쪽 구릉지에는 넓은 밭이 자리했다. 경작을 기다리는 황토색 밭과 이미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녹색 밭이 건강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백토마을로 들어서는데 이팝나무에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4월말에서 5월 초순이면 이팝나무가 꽃을 피운다. 입하(入夏)에 꽃이 핀다고 해 이팝나무라고 했다고 하고, 하얀 꽃이 순쌀밥(이밥)을 닮았다고 해 이팝나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백토마을회관과 커다란 정자가 이팝나무와 느티나무, 팽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회관과 정자는 주민들의 쉼터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백토마을 앞쪽에 들판이 자리하고, 들판 뒤에는 구황산이 우뚝 솟아있다. 구황산에서 고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전북 고창과 전남 장성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성송초등학교 옆길을 따라 낮은 구릉지를 따라서간다. 성송초등학교는 성송면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지만 2024년 3월1일 기준 학생수가 20명에 불과하다. 전교생이 한 학급 수준에 불과한 학생수가 오늘의 농촌현실을 말해준다. 길 주변에는 인삼밭이 많다. 종종 복분자밭을 만나기도 한다.

축동마을 뒤쪽 언덕에 도착하자 수령 365년에 달하는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의젓하게 서 있다. 소나무는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디면서도 늠름한 자태를 잃지 않고 아름다운 수형을 이뤘다.

축동마을 뒤쪽 언덕에 도착하자 수령 365년에 달하는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의젓하게 서 있다. 소나무는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디면서도 늠름한 자태를 잃지 않고 아름다운 수형을 이뤘다. 노송은 마을주민들에게 쉼터도 돼주고,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에도 주민들과 함께 해왔다.

판정리 고인돌은 탁자식 2기, 기반식 지석식 4기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네 개의 받침돌 위에 얹어진 탁자식 고인돌은 조형미도 뛰어나다.

소나무 주변에는 6기에 달하는 고인돌이 분포해 있다. 판정리 고인돌은 탁자식 2기, 기반식 지석식 4기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네 개의 받침돌 위에 얹어진 탁자식 고인돌은 조형미도 뛰어나다.

수 천 년을 지켜온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양식으로 고창지역에만 1천665기가 분포돼 있다.

고창 고인돌은 고인돌공원이 있는 고창천 주변에 가장 많이 분포돼 있지만 고창의 다른 지역에도 산재해 있다. 무심히 서 있는 고인돌이 우리를 청동기시대로 아주 먼 시간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판정리 축동마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모든 농촌마을이 그렇듯이 빈집이 많다. 제법 반듯한 한옥도 거주하는 주인을 잃은 채 텅 비어있다. 점점 늘어나는 농촌마을 빈집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앞선다. 식량을 책임지는 농업과 자연 속의 농촌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다.

축동마을에서 23번 국도 지하 굴다리를 지나니 판정마을이 가깝게 바라보인다. 판정마을 입구에 ‘손화중 도소터’라 쓰인 이정표가 있다. 판정마을 버스정류장에서 1.7㎞ 떨어진 성송면 괴치리에 손화중 도소터가 있다. 도소는 동학 도접주들의 총집회기관을 일컫는다.

‘여백의 길’ 1코스 종점은 판정버스정류장에서 300m 쯤 떨어진 판정마을회관이지만, 우리는 2코스까지 연결해서 걷기로 해서 곧바로 향산리 고인돌로 향한다.

향산리 고인돌. 향산리 고인돌은 판정리 고인돌과 마찬가지로 탁자식과 지석식 고인돌이다.

길은 구릉지 밭 가운데로 난 농로를 따라서 이어진다. 구릉지 밭가에서 향산리 고인돌을 만난다. 판정리 고인돌과 마찬가지로 탁자식과 지석식 고인돌이다. 이곳의 탁자식 고인돌은 높이가 판정리 고인돌보다 높고 기둥돌이 3개인 것도 있다.

구릉지에 형성된 커다란 밭에는 고구마 모종을 심어놓았고, 또 다른 밭에서는 오늘 모종을 심고 있었다. 이곳 구릉지에 자리한 밭은 한 필지가 수 천 평에 달할 만큼 넓다. 넓은 밭에서는 대단위로 양파도 재배된다. 황토색을 띤 밭과 녹색 양파밭이 거대한 조각보처럼 보인다.

넓은 밭가에 또 다른 고인돌 한 기가 우뚝 서 있다. 주변에 밭을 만들면서 흙을 파내어 고인돌 부분만 평지보다 높아졌다. 높이 자리한 탁자식 고인돌이 주변을 호령하고 있는 것 같다. 고인돌 앞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넓고 경사진 밭들이 양파, 인삼, 고구마를 품에 안고 넓게 자리했다. 구릉지 밭길을 걷다보니 월평마을이 지척이다. 곳곳에서 밭일 하는 농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여행쪽지
▲고창 ‘여백의 길’은 고창군 성송면, 공음면, 무장면, 대산면 둘레 73㎞, 10개 코스를 걷는 길이다. 구릉지와 들판을 이룬 소박한 농촌마을을 잇는 길이다.
▲여백의 길 1코스와 2코스에서는 조형미 넘치는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1코스(산수마을-판정마을, 8㎞)와 2코스(판정마을-포동마을, 8㎞) 중 월평마을까지 걸었다.
※코스 : 산수마을회관-외원마을-내원마을회관-송산마을회관-백토마을회관-축동경로회관-판정마을(1코스)-향산리 고인돌-월평마을회관(2코스 중 일부)
※거리, 소요시간 : 11.2㎞, 3시간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산수마을회관(전북 고창군 성송면 산수길 52-10)

<장갑수·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