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위대한 정신은 전 세계인의 자랑 / 오주섭

2024년 05월 30일(목) 18:22

오주섭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1980년 당시 5월은 올해 처럼 날이 무척이나 더웠다. 그 뜨겁고 모진 5월을 고등학교 1학년 때 겪었다. 매년 5월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럴 때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고 또 듣고, 따라 부른다. 44년이 지난 지금도 “김대중을 석방하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는 구호가 귓전에 들리는 듯 하다. 당시 광주의 공간 안에 있었던 모든 시민들은 지금도 5월이 되면 그 두렵고, 참혹했던 시공간이 떠올라 먹먹한 가슴으로 5월 한 달을 지낼지 모른다.

30년 전 5월, 퇴근하고 지역방송의 5·18 다큐멘터리를 보다 필자는 순간 너무 놀라 숨이 멎는 듯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의 형이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며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친구 형은 계엄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겪었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거동할 수 없는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친구는 형의 사연을 필자뿐만 아니라, 지인들에게 말한 적이 없어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이처럼 필자 주변에도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분들이 많다. 평범한 광주시민들이 자국민을 학살하는 계엄군의 만행에 맞서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 대동세상(大同世上)이었다. 당시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이 물러간 며칠 동안 대동세상을 경험했다. 그 소중한 경험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더욱 불타 올랐으리라.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2000년 5월18일 5·18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식에서 “5·18의 광주는 우리에게 위대한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날의 광주는 세계의 모든 시민에게 자유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드높은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5·18에서 우리가 보았던 정신은 인권 정신, 비폭력 정신, 성숙한 시민정신, 평화의 정신이었습니다. 이러한 광주의 위대한 정신은 우리만의 자랑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믿고, 숭상하는 전 세계인의 자랑인 것입니다. 광주 시민의 행동이야말로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도 얼마나 위대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인간 승리의 대서사시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44년이 지난 지금 어떠한가? 광주시민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礎石)을 다졌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5월 광주를 폄훼하고, 진실을 왜곡하고, 말로만 5·18 정신을 외치고,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는 무리들이 넘쳐난다. 보수 진영은 광주에 오면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이야기하면서도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딴청을 피운다. 심지어 올해 44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오월’과 ‘자유’만 강조했을 뿐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선 때 광주시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공약하고 이제야 본심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가 차원의 최초의 종합보고서인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은 왜곡, 폄훼에 악용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실려 있어 발표를 앞두고, 지역사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5월 공법단체 중 일부는 5·18 정신에 반하는 행위와 내홍(內訌)으로 인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강조하셨듯 ‘광주의 위대한 정신’이 전 세계인의 자랑이 되려면 먼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 그러려면 5월 관련 단체와 시민사회, 전문가, 정치권과 행정이 다 함께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 보수 정권에 대한 압박과 함께 우리 내부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 모두 잘 기억해야 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가 그날의 광주에 빚지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살아남은 사람들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광주 항쟁의 정신을 받들어 인권을 더욱 신장시키고, 민주주의를 완성하는데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