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정치 복원’ 출발점은 민주당 지도부 ‘입성’ <광주매일신문 창사 33주년 '작심제언'> 최대 ‘텃밭’ 불구 광주·전남 리더십 창출 ‘높은 벽’ 지역내 정당 경쟁 중요…민주당 1극 체제 벗어나야 수십년간 ‘본선’ 없는 선거 폐해…지역 낙후 악순환 김진수 기자

2024년 06월 03일(월) 21:18

호남을 품고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정의와 평화의 고장 전라도. 오랜 역사 속에서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존재를 어김없이 드러냈듯, 남도의 숨결이자 호남의 젖줄인 영산강이 마을을 굽이굽이 돌며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창사 33주년을 맞은 광주매일신문도 호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안고 유유히 흐르는 저 영산강처럼 광주·전남에 희망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사진은 나주시 동강면 비룡산에서 바라본 영산강./김애리 기자

질문을 던진다. 수십 년 동안 호남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온 민주당(중앙당)은 정말 제대로 호남을 대변하는 정당이었나? 호남의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에, 또는 아픈 상처를 보듬기 위한 노력에 최소한 자신들이 받은 지지의 온도만큼 뜨겁게 대응해 왔나?

이에 대한 지역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만족스럽지 못하다”에 방점이 찍힌다.

호남 민심과 민주당(중앙당)의 괴리는 무엇보다 당의 선출직 지도부에 중량감 있는 호남(지역구) 출신 정치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최고위원의 예를 들자면 광주는 21대 총선 이후 대부분 초선들로 채워져 도전할 자원 자체가 적었다. 전남의 경우 일부 의원이 호남 후보 단일화를 기반으로 도전하기도 했지만 모조리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광주매일신문이 창사 33주년을 맞아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호남 정치 복원’이란 화두를 던져본 결과 다선 의원들은 예외 없이 민주당의 ‘리더십’에 호남이 포함돼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전남 최다선인 5선의 박지원 의원(해남·완도·진도)은 “호남 정치인들이 당내 활동을 주도하고 당직에도 도전해야 한다”며 “22대 국회에서 호남 정치를 복원하고 호남 존재감을 키우는 것은 반드시 정권을 교체하라는 호남의 민심에 화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4선의 이개호 의원(담양·함평·영광·장성)은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도록 솔선하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호남의 다선 의원으로서 지역 출신의 ‘리틀 DJ’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3선의 서삼석 의원(영암·무안·신안)도 “선거 때마다 현역 교체 비율이 높아져 다선의 무게감을 갖는 정치인이 대폭 줄고 정치력은 축소됐다”며 “광주·전남·전북이 다시 민주당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상생의 힘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리더십’에서의 호남 부재는 국민의힘과는 사뭇 다르다. 실제 국민의힘의 ‘심장’ 역할을 하는 대구의 경우 지역에서 성장한 다선 의원들이 꾸준히 배출되면서 주호영·윤재옥·추경호 등 원내대표도 연속 배출하고 있다.

‘호남 정치’ 복원의 또 다른 키워드는 ‘경쟁’이다.

한국 정치의 대표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국적 양당 과점 현상과 지역적 1당 독점 현상으로 압축할 수 있다.

전국적 양당 과점은 각각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란 거대 양당이 정치를 사실상 독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유독 정치만 낡은 질서가 굳건하다.

지역적 1당 독점은 호남에선 민주당, 영남에선 국민의힘이 수십 년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있다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전국 17개 시·도 중 광주와 대구는 여러 경제 지표상 가장 낙후된 2곳이다.

호남에서의 민주당 1극 체제는 경쟁 없는 선거를 만든다. 물론 민주당 공천을 따내기 위한 예비후보간 경쟁이 치열하지만 이때 예비후보들은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천권을 쥔 당 대표의 눈치를 먼저 볼 수밖에 없다.

선거가 유권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권을 쥔 사람이나 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불행을 잉태한다. 유권자들은 ‘껍데기’ 주권자, 국회의원들은 4년짜리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경쟁이 없으니, 투표율도 낮다. 예컨대 광주의 지방선거 투표율은 제4회 46.3%, 제5회 49.8%, 제6회 57.1%, 제7회 59.2%, 제8회 37.7%를 기록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특정 정당 후보가 이길 것이 뻔한 ‘하나 마나 한’ 선거인데 굳이 투표장에 갈 이유가 없다.

다행인 것은 호남 유권자들도 앞으로 여러 선거에서 ‘본선’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22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경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광주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조국혁신당 47.72% ▲더불어민주연합 36.26%였다. 조국당은 광주의 96개 행정동 중 90곳(93.8%)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 밖에 진보당은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 전남 출신 의원(전종덕)을 포함해 3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등 꾸준한 확산세다. 지난달 15일 5·18묘역의 모든 묘비를 7시간30분에 걸쳐 닦는 진정성을 보여준 보수 성향의 개혁신당도 호남의 젊은 유권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고 있어 주목된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민주당과 조국당이 경쟁하면 진보 세력이 분열될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가당치 않은 말”이라며 “경쟁이 살아나야 호남 정치의 옛 영광을 복원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민주당 1극 체제’의 폐해를 줄이고 지역 발전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