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했습니다” [‘학동참사’ 3주기](상)끝나지 않은 마무리 집행유예·항소심 진행 등 책임자 처벌 ‘제자리걸음’ 추모공간 조성·54번 버스 영구보존 협의 등 ‘한 발’ 장은정 기자

2024년 06월 06일(목) 20:32

지난 2021년 6월 철거 작업 중인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버스를 덮쳐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이 다 치워진채 가림벽이 설치돼 있다./김애리 기자

2021년 6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던 17명의 사람들이 ‘안전’ 대신 ‘이익’을 쫓은 이들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로 ‘학동 붕괴 참사’다. 사고 이후 3년 가까이 되는 현재 유가족들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못했으며 책임자 처벌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본보는 학동 붕괴 참사 관련 해결해야 할 문제 등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기리기 위한 기사를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지난 2021년 6월9일 오후 4시22분께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졌다. 무너지던 건물이 인근을 지나던 운림 54번 버스를 덮치면서 무고한 시민 9명이 죽고 8명이 다쳤다.

수사 기관은 ‘학동 붕괴 참사’의 원인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무리한 철거방식 등을 지목, 관련자와 책임 법인을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건축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우선’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시공사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과 하청업체 한솔기업, 재하청업체 백솔기업, 철거공사 담당 다원이앤씨 관계자, 현장 감리 등 7명이다.

참사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22년 9월 광주지법 형사11부는 하청·재하청업체와 현장 감리에겐 각각 징역 1년6개월-3년6개월의 실형을, 원청인 현산에겐 징역·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들에 대한 형은 1심 판결 이후 2년이 돼 가는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의 항소로 재판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책임 공방’만 되풀이되고 있는 항소심 재판은 다음 달 18일 광주고법 형사1부에서 재개된다.

붕괴 참사에 대한 책임 외에도 수사 기관은 학동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비위를 추가로 밝혀냈는데, 이들에 대한 재판 역시 한창이다.

부당하게 철거·시공 하청업체를 선정한 혐의(건설산업기본법 위반)로 기소된 현산과 한솔기업에 대한 재판은 다음 달 12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불법 브로커’로 활동한 문흥식 전 5·18 구속부상자회장에게 금품을 준 대가로 석면 철거 공사를 따 낸 이들은 각각 1심에서 징역 4개월-1년·집행유예 2년을 받았으나, 항소해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

재개발 비위의 몸통 격인 문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4년6개월과 9억7천만원의 추징 명령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4년에 추징금 5억2천만원으로 감형돼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법원의 판단에 아쉬움을 보이고 있다.

유가족들은 참담한 심정을 토해내고 있다.

이진의 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항소심 선고가 나와도 대법원 상고가 이어질 게 뻔하다. 책임자 처벌까지 앞으로도 긴 기다림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원통하다”며 “조금이라도 상처가 아물기 위해선 참사 책임자들에게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유가족들은 학동 참사의 트라우마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아 관련자 모두를 위한 방안 마련을 소원하고 있다.

이에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난달 31일 유가족들을 만나 다음 달 개원 예정인 국립광주트라우마센터 등을 통해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등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운림 54번 버스에 대해서도 유가족이 바라는 ‘영구 보존’ 쪽으로 약 3년 만에 가닥이 잡혔고, 피해자 추모 공간도 학동4구역과 천변을 연결하는 녹지 부근에 조성하는 것으로 뜻이 모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어 유가족들이 또 한 번 상심하고 있다.

이진의 대표는 “참사 3년 만에 추모 공간 조성의 큰 틀이 잡혔으나, 첫 삽을 뜨기도 전에 ‘혐오시설’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와 유가족들이 또 다른 상처를 입고 있다”며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바라는 마음이니 부디 따가운 눈초리를 거둬달라”고 호소했다.

/장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