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 지워지지 않는 말과 글 / 진호림 |
| 2024년 06월 16일(일) 19:55 |
|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데 지워지지 않는다면 끔찍한 일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더러워진 물이 깨끗해질 수 있는지에 관한 답을 찾는 것과도 같다. 더러워진 물이 쉽게 깨끗해지지 않는 것처럼, 과거의 말과 글은 시간이 흘러도 온라인 공간에 남아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거나 깨끗한 물을 끊임없이 흘려보내야만 하듯이, 실수나 잘못을 칭찬으로 덮으며 자신을 미화하고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이 고작이다.
지워지길 원하는 이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사람도 있다. ‘디지털 청소부’나 ‘디지털 장의사’로 불리는 ‘평판관리사’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개인이나 기업의 평판을 관리한다. 순간의 실수나 잘못된 선택으로 발생한 부정적인 정보를 지워주기도 하고, 숨겨주기도 한다. 또 나에 대한 악성 게시물이나 허위 정보를 찾아내 삭제하는 일을 도와준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 역시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고작해야 긍정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댓글로 여론을 조성하는 등 분위기를 바꿔 나가는 수준이다. 어디 까지나 관리일 뿐, 근본적인 실수나 잘못을 지워주는 것은 아니다. 밤이 되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처럼 과거의 말과 글, 행동은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온라인 세계의 확장은 우리의 삶에 편리함을 가져다줬다. 동시에 과거의 말이나 행동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되돌아올지 알 수 없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무심코 올린 글이나 언행들이 소환되면서 인품과 성격, 상식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변명도 해 보고, 고개 숙여 사과도 해 보지만 여론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선거 판도가 바뀌기도 하고, 입각을 앞둔 장관 후보자가 물러나는 예도 늘고 있다.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본인 스스로가 뱉어낸 말이라는 사실은 더욱 큰 자책감을 안겨준다. 명예훼손도 아니고, 지워달라고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내가 한 말 내가 한 행동, 아무 생각 없이 올린 댓글 하나까지 소환되는 곳이 포털이다. 가짜를 교묘하게 꾸민 딥페이크(Deepfake)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다 자업자득이다.
경쟁이 치열한 정치판이나 팬심으로 인기를 유지하는 연예계가 특히 그렇다. 보는 눈이 많은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기업의 경우에는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소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언행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온라인 공간에 남아 있는 과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다.
디지털 시대는 누구나 글을 쓰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말과 글이 넘쳐나고, 유튜브나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쉽게 공유된다. 과거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제한된 정보만을 접할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는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무분별한 말이나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개인의 평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과거 발언으로 곤경에 처하는 일이 유난히 많다. 그만큼 말을 많이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말에 무게가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수많은 말들의 잔치…. 국회의원 선거가 끝이 나고, 22대 국회가 새로 문을 열었다. 이제는 선거 과정에서 쏟아낸 말과 약속을 책임질 때다. 말보다 행동으로, 약속보다 실천으로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몸에 새긴 문신은 살을 태워서 없앨 수 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온 말, 손끝에서 흘러나온 글은 죽어서도 없어지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