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전제로 한 논술형 ‘바칼로레아’…생각하는 힘 키운다 ['다시 책으로' 독서교육이 미래교육을 만든다](6)파리서 ‘한국형 바칼로레아’ 가능성 모색 독서로 쌓은 지식 있어야 논리정연 답안 작성 용이 프랑스 정부 독서교육 집중 합격률 90% 이상 성과 교육부·문화부·가정 등 ‘독서 습관화’ 조성 온힘 김다이 기자

2024년 06월 17일(월) 20:06

프랑스는 학교 도서관을 중심으로 독서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파리 5구에 위치한 College Rognoni(로그노니 중학교)의 도서관 모습.

파리 13구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도서관(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 사서가 어린이 도서 섹션을 소개하고 있다.(위) 도서관에는 학생들을 위한 필독서와 인기 있는 만화책·잡지, 한국 그림책 등 다양한 나라의 도서가 비치돼 있다.

독서교육에 열의를 갖고 있는 프랑스는 중등과정 졸업시험으로 ‘바칼로레아’(Baccalaureat)를 실시하고 있다.

보통 한국의 수능과 비슷한 개념으로 비교하지만 20점 만점에 10점(50%) 이상의 일정 수준만 넘기면 공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절대 평가로 일종의 자격시험이다.

바칼로레아는 프랑스어와 철학이 공통과목이다. 특히 수학 시험조차 사지선다형이 아닌 논술 형태여서 학령기에 독서로 쌓은 지식이 전제돼야 사고력을 바탕으로 답안을 작성할 수 있다.

바칼로레아의 필수 영역인 철학 논술 시험문제는 매년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라 회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문제에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사고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모범 답안은 독서량에서 판가름 난다.

최근 바칼로레아의 합격률은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독서교육에 집중하고 있는 대목이 바칼로레아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단순 암기, 주입식 교육과 달리 책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독서교육에 집중하고 있는 점이 차이점이다.

프랑스 교육부는 지난 2017년 바칼로레아의 필수 선택 외국어 영역에 한국어를 공식 과목으로 추가해 한국어 교육 비중도 높아졌다.

윤강우 프랑스 한국교육원장은 “프랑스는 다문화사회이기 때문에 다양한 외국어를 배우는 정책이 교육의 기본”이라며 “한국어가 바칼로레아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정식과목으로 채택된 된 게 지난 2017년이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한국교육원은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KBBY)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는 프랑스 중·고등학교에 매년 한국 유명작가의 그림책을 무상 보급하고 있다.

바칼로레아를 대비하기 위한 프랑스 학교의 독서교육은 교사 자율적 권한이 허용된 교실과 학교 도서관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교마다 도서관이 잘 갖춰져 있어 학생들이 공강 시간마다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프랑스 학교는 쉬는 시간 문을 잠그고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낸다. 학생들은 운동장과 복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또 도서관에도 많은 발길이 이어진다. 학교 도서관은 개인 시간표에 따라 공강 시간을 활용하기 좋은 가장 적합한 장소다.

파리시교육청 관계자는 “독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독서 전략을 깨우치는 것이 곧 학업 성공과 이어진다”며 “모든 교사는 과목에 관계없이 명확한 설명을 통해 깨어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동네 곳곳에 있는 작은 서점을 비롯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서관부터 국립도서관까지를 독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자녀와 함께 방문한 Mohamed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에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라며 “학교에서 반 전체가 도서관을 가거나,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같이 하면서 동시에 책도 읽을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독서 교육은 교육부, 문화부 등 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 각 가정도 모두 손을 보태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1년간 읽은 100여권 이상의 학년별 권장 도서 목록을 배포하고,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된 수업 구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통합 독서 교육을 진행한다.

파리시교육청은 읽기를 시작한 학생들을 위해 50세가 넘은 은퇴자들이 직접 책을 읽어주는 ‘책 읽어주기’ 프로젝트를 실시해 일상 속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프랑스 한국교육원 관계자는 “프랑스 교육부가 정책을 내놓으면 문화부나 지자체에서 독서의 밤 등 독서와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며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정책은 한국에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윤강우 프랑스 한국교육원장 “바칼로레아는 독서력 기반 입시 정책”

파리 16구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위치한 프랑스 한국교육원은 프랑스에서 한국어가 정규 교육과정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윤강우 프랑스 한국교육원장은 “현재 프랑스에 61개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와 12개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한국 수업을 개설한 학교에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며 “6월 내 그림책 등 26권씩을 40개 학교에 무상보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 원장은 “프랑스 학생들은 개인 시간표에 따라 공간 시간이 있어 쉬는 시간 활용을 위해 학교 도서관을 많이 찾기 때문에 한국 책을 도서관에 전달하고 있다”며 “바칼로레아라는 입시 정책 자체가 독서력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통과하기 힘든 시험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랑스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만 간단히 정해져 있다. 교과서 시장도 한국처럼 국검인(국정·검정·인정) 체제가 아닌 자유발행제여서 교과서 선택이 다양하다”며 “교사의 자율권이 높아 수업 시간에 교과서 대신 책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특히 프랑스 독서교육의 중심인 도서관에 대해서는 “프랑스 교육부뿐만 아니라 문화부, 지자체, 각 부처가 결합해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교 도서관과 지역별 도서관이 잘 조성돼 있다”며 “주말마다 또는 날짜를 정해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책을 반납하고 대여한다”고 언급했다.

끝으로 윤 원장은 “프랑스 대학에서도 한국어 열풍이 매우 거세게 불고 있다”며 “유럽에는 프랑스, 영국, 독일에 한국교육원이 있는데 교민 수가 가장 적은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학교가 가장 많다”고 덧붙였다./김다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