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바디 상과 조지아 대학의 그래디 칼리지 / 주정민 |
| 2024년 06월 19일(수) 20:06 |
|
텔레비전과 영상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상이 어떤 상인지 잘 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많이 알지 못한다. 이 상은 방송 분야의 ‘퓰리처상’으로 불린다. 퓰리처상이 신문 분야에 의미 있는 기사를 선정해 수상한다면, 이 상은 전자매체, 즉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온라인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을 선정해 수상한다. 그래서 신문 기자들은 ‘퓰리처상’, 방송 기자들은 ‘피바디 상’을 받는 것을 매우 영예롭게 생각한다.
피바디 상 홈페이지에는 “이 상은 우리 시대 사회적 이슈와 새로운 목소리를 반영하는 스토리텔링의 우수성을 기리는 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상이 어떤 목적으로 운영되고, 누구에게 수상하는지 잘 보여준다. 올해에도 ‘글로벌 영향력’ 부문에서 1991년 이후 세계 인권문제를 영상으로 제작해 온 ‘위트니스’가, 그리고 다큐멘터리 부문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록한 PBS의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이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 피바디 상은 KBS와 인연이 많다. 2001년 KBS 전주방송 총국의 다큐멘터리 ‘그 오두막에는 84살의 청년이 산다’, 2009년 KBS의 청소년 드라마 ‘정글피쉬’, 그리고 2010년 다큐멘터리 ‘누들 로드-아시아의 부엌을 잇다’가 이 상을 받았다. 인기나 상업성보다는 스토리텔링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상의 취지에 부합하는 작품들이다.
이 상은 미국의 방송영상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미국에서 텔레비전방송이 1937년에 시작됐고, 1년 후인 1938년 조지아주 출신 거부 조지 포스터 피바디(George Foster Peabody)의 기부로 미국방송협회(NAB)가 상의 제정을 논의했다. 그리고 조지아 대학(UGA)이 상의 운영을 함께 하기로 하면서 1941년부터 기부자의 이름을 붙여 수상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라디오 부문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이후 텔레비전과 온라인 분야로 확대했다.
이 상의 심사와 운영은 조지아 대학의 그래디(Grady) 저널리즘 및 매스커뮤니케이션 칼리지(그래디 칼리지)가 중심이 돼 진행한다. 조지아 대학 및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피바디 위원회(Peabody Board of Jurors)가 매년 4월 그래디 칼리지에 모여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수상작을 선별한다. 매년 1천개 이상의 출품작 중에서 우선 60여 개를 뽑고, 이 중에서 30여 개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한다. 특이한 점은 이 상은 등수가 없고, 분야별 상의 결정도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제를 택하고 있다. 단과대학 차원에서 이런 저명한 상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조지아 대학에는 피바디 상에 출품한 작품을 보관하고, 수상작을 전시하는 별도건물의 도서관(Richard B. Russell Special Collections Libraries)이 있다. 이곳은 그동안 출품했던 작품의 서류와 대본, 원본 프로그램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더불어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라디오, TV, 영화 관련 다수의 프로그램도 소장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약 25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이를 교육과 연구 등 필요한 분야에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 가면 미국 방송영상의 역사를 한눈에 보고 체험할 수 있다. 이 수장고와 보관하고 있는 작품 자체가 대학의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준다.
피바디 상의 운영을 보면서 상의 위상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대학은 권위 있는 상의 운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상은 중요한 이야기(Stories That Matter)를 조명하고 진실, 사회 정의, 형평성을 추구하는 예술과 보도의 힘을 입증하려고 한다. 이러한 힘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힘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상을 관리하고 일을 처리하는 조지아 대학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시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