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무적자 지역사회 온정으로 ‘연명’ 영광사회복지협의회,월 2회 반찬 지원·좋은이웃들 사업 추진 郡 “법률 근거 없어 도움 제한”…‘복지 수혜’ 신분 취득 최우선 안재영 기자

2024년 06월 19일(수) 21:13

지난 18일 오후 영광군 염산면 소재 50대 후반 추정 무적자 A씨의 거처. 일반적인 컨테이너 2개를 붙인 정도 크기의 단칸방이 A씨의 ‘집’이다./안재영 기자

<속보>“너무 도와드리고 싶은데……. 법적 근거가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난 18일 오후 4시께 영광군 염산면 소재 거처에서 만난 50대 후반 추정 무적자 A씨(본보 6월14·18일 6면 보도)는 밭일을 막 마치고 온 터라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 채 영광군 염산면사무소와 영광군사회복지협의회(회장 임두섭), 영광군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센터장 남궁경문) 관계자 등을 반갑게 맞았다.

이들과 함께 들어선 A씨의 ‘집’은 일반적인 컨테이너 2개를 붙인 정도 크기의 단칸방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겨울용 점퍼부터 작업용 바지 등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는 매트리스였다.

이렇게 둔 이유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집안을 둘러봤는데, 작은 수납장만 하나 있을 뿐 일반 가정집에선 2-3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옷장’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 업소용 환풍기가 달린 한쪽 벽이 눈에 들어왔다. 벽 주변엔 가스레인지, 밥솥, 전자레인지, 냉장고 등 음식을 먹는데 필요한 가전제품이 다닥다닥 놓여 있었다.

이 중 가스레인지는 작동이 되지 않아 “어떻게 음식을 드시냐”고 묻자 A씨는 “버너가 있어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이날 영광군 염산면사무소 측은 A씨에게 ‘나눔 냉장고’를 통해 기탁된 라면 등 먹거리를 전달했다.

이를 받아든 A씨는 “감사하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현재 상황으론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인 게 마음이 쓰였는지 염산면사무소 관계자는 “2주에 한 번씩 수령할 수 있으니 잊지 말고 꼭 오시라”고 당부했다.

동행한 영광군사회복지협의회 관계자도 A씨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영광군사회복지협의회는 A씨의 특정후견인인 영광군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속 사회복지사를 통해 그의 사연을 알게 되자 지난 5월9일부터 2주에 한 번씩 반찬을 지원하고 있다.

반찬 지원 외 A씨를 도울 방법을 고민한 영광군사회복지협의회는 그를 올해 ‘좋은 이웃들’ 사업 대상자로 선정했다.

좋은 이웃들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복지 서비스를 연계·지원해주는 민·관 협력사업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는 덕에 A씨가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사업 대상자에겐 1년에 60만원 한도 내에서 긴급 생계·의료 지원 등이 가능해 영광군사회복지협의회는 A씨에게 가장 시급한 것을 돕기 위해 이날 방문에 함께했다.

A씨는 현재 음식을 씹을 때 치아에 심한 통증을 느껴 반찬 등을 가위로 잘게 잘라 겨우 삼키는 상황이지만, 신분이 확인되지 않아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선 영광군사회복지협의회는 의료 지원 대신 조만간 A씨의 고장난 가스레인지를 교체하고 생필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A씨의 거듭된 감사 인사를 뒤로하고 나온 각 기관 관계자들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염산면사무소 관계자는 “더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신분이 없어 복지 혜택을 제공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내국인임을 인정받아 ‘성과 본’ 창설허가가 나야 복지 수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영광군사회복지협의회 관계자는 “요즘 같은 세상에도 A씨 같은 분이 있다는 게 너무 마음이 쓰여 단체 차원에서 나서게 됐다”며 “신분만 있었으면 여러 기관과 연계해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도울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 상황이 아쉽다”고 밝혔다.

영광군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 관계자는 “궁극적인 목표는 A씨가 한국 사람임을 인정받아 노후라도 조금 안정적으로 보내는 것”이라며 “‘아무런 존재도 아닌’ 채로 세상을 떠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고 소원했다.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