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식통계 없고 지원·대책도 無…수십년째 ‘구태’ [고립무원 ‘무적자’](중)수수방관 국가 구제 실마리 전수조사 범정부 차원 실시 불구 한계 여실 관련 기록 보존 만료에 실태 몰라…파악돼도 임시조치뿐 안재영 기자

2024년 06월 26일(수) 19:58

사진=아이클릭아트

<이전 기사 -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모순…그에겐 전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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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닌 똑같은 사람인데 왜 무적자에 대한 기록이 없을까.

그 이유는 무적자의 유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국적자나 밀입국자 중 국내에서 신원 조회가 안 되는 사람도 무적자에 속하나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내국인 무적자의 경우 신원이 말소된 자와 등록 자체가 안 된 사람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살아있는 망자’의 경우 신원이 존재는 했던 만큼 다시 살리는 게 비교적 어렵지 않다.

문제는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 아동’으로 살다가 뒤늦게 발견된 이들이다.

기록이 없어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지난 13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도로교통법 위반(음주·무면허 운전),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무적자 A씨 역시 유령 아동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령 아동은 지난해 전국 단위 전수조사를 통해 그 실태가 확인된 바 있다.

전수조사에 앞서 감사원은 2015-2022년 병원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임시 신생아번호로만 존재하는 아동 2천236명을 발견했고, 이 중 23명을 추려 소재 파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원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청, 지자체, 경찰 등과 함께 감사원의 감사 등으로 출생 신고가 이뤄진 아동을 제외한 나머지 2천123명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 1천25명의 생존을 확인했다.

나머지 1천98명 중 814명은 영아 살해 등 범죄 연관성이 의심돼 수사 당국이 나서기까지 했다.

범정부 차원의 전수조사 덕에 무적자로 전락할 뻔 했던 유령 아동 상당수가 구제됐으나,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었다.

조사 시점 및 근거 자료가 임시 신생아번호가 비교적 정확하게 관리된 2015년 이후로 그쳐 그 이전에 태어난 이들에 대한 파악은 아직까지 명확히 이뤄지지 않아 무적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 통계는 전무한 실정이다.

다만 무적자와 비슷한 처지의 ‘무호적자’에 대한 전수조사는 행정안전부의 전신인 행정자치부 시절 1차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관련 자료가 보존 기간 만료로 폐기돼 행정안전부도 전수조사가 1998-1999년 사이 이뤄진 것으로 짐작할 뿐 당시 파악된 무호적자 숫자는 물론 정부의 지원으로 신분을 취득한 이가 몇 명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 차원의 첫 전수조사 이후 행정자치부는 2005년 ‘주민등록 일제 재등록기간’을 운영하며 법무부와 함께 신분이 말소된 이들에 대한 구제에 나섰으나, 대상자 스스로 신고해야만 하는 한계가 있었다.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과 가장 맞닿아 있는 지자체 차원의 노력 역시 포착돼야만 나서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 18일 A씨는 지난 2012년부터 영광군에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광군은 지난해 광주지검으로부터 A씨의 특정후견인 지정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 그의 존재를 알게 됐다.

한 지역에 정착해 10년 가까이 살고 있었음에도 존재를 몰랐다는 대목에서 지자체 등 정부 기관이 무적자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무적자의 존재가 수면 위로 올라와도 가능한 건 사회보장번호 부여 및 특정후견인 지정 등 임시조치 뿐이라는 점도 문제다.

앞서 영광군이 밝혔던 것처럼 복지 제도 수혜는 신분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무적자의 발견부터 구제까지 정부가 나서 체계적으로 보호·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