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정읍 무성서원 둘레길 지역공동체와 함께 했던 서원과 선비정신이 서린 정자들 /정리=박희중 기자 |
| 2024년 07월 02일(화)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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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 주차장에서 마을 앞 다리를 건너니 무성서원 홍살문이 맞이한다. 무성서원은 다른 서원과 달리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원은 경관이 빼어난 곳에 위치해 있는데 무성서원만 예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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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은 사원의 입지를 선정할 때부터 일반서원과 달리 자연경관보다는 접근성에 주목했다. 주거지 인근에 서원을 건립해 성리학이 사림에 한정하지 않고 지역공동체 전반으로 확산되는데 주안점을 뒀다.
무성서원으로 들어서는데 2층 누각 현가루(絃歌樓)가 맞이한다. 현가루는 1891년 건립된 전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한 경쾌한 건물이다. 논어의 현가불철(絃歌不輟)에서 따온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상황이 돼도 학문을 계속한다는 의미이다. 문루는 2층 누각으로 출입문 기능과 함께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현가루 1층 문을 통해 들어서자 강학공간으로 사용됐던 명륜당이 정면에서 다가온다. 1828년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중건된 명륜당에는 무성서원(武城書院)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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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은 1696년 숙종으로부터 사액됐다. 강학공간인 명륜당은 중앙 3칸은 마루가 앞뒤로 트여있고, 좌우 양쪽에 방이 배치돼 있다. 명륜당 마루에 앉아있으니 앞쪽은 마당과 현가루가, 뒤쪽은 사우인 태산사가 바라보인다.
서원은 유생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곳이지만 사림의 사표가 되는 인물을 제향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원이나 향교 건물은 앞쪽에 강학공간, 뒤쪽에 제향공간이 배치된다. 무성서원 역시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앞쪽에, 제향공간인 태산사가 뒤쪽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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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 태산사는 1484년 창건하고 1844년 중수했다. 고운 최치원을 중심으로 불우헌 정극인, 신잠,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선생 등 7위를 모시고 있다.
서원에는 강학공간 앞마당 양쪽으로 학생들의 숙소인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는데, 무성서원은 담장 밖에 동재인 강수재(講修齋)만 있다. 강수재 앞쪽에는 3기의 비석이 서 있는데, 그중 병오창의기적비(丙午倡義紀蹟碑)가 눈길을 끈다.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듬해인 1906년 6월13일 면암 최익현, 둔헌 임병찬의 주도로 무성서원에서 호남 최초로 의병이 일어난 역사적 현장을 기념하기 위해 1992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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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을 나와 원촌마을 골목길을 따라 무성서원 둘레길을 걷는다. 마을 이름도 무성서원이 있어 원촌(院村)이라 부른다. 마을 앞 둑길을 따라가니 작은 연못이 나온다. 연못 옆에 태산선비문화사료관이 자리하고 있다.
태산선비문화사료관은 1998년 개관해 정읍의 동부권에 위치한 태산선비문화권역의 예술·민속문화, 누정, 향교, 서원, 사우, 불교유적 등 주요한 문화자원을 소개·전시하고 있다.
태산선비문화사료관 옆에 불우헌 정극인선생 동상이 서 있다. 한양에서 벼슬생활을 하던 정극인은 처가가 있는 원촌마을로 내려와 글을 쓰고 후진을 양성했다. 선비로서 검소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 성종 때 이곳에서 춘경을 완상하며 안빈낙도하는 풍류생활을 노래한 상춘곡(賞春曲)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작품이다.
정극인 동상을 지나 후송정으로 향한다. 송정 바위 아래에 있는 후송정(後松亭)은 1899년 세워진 정자로, 송정(松亭) 10현(賢)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십송정(十松亭)이라 했으나, 1985년 정자를 다시 지으면서 후송정(後松亭)이라 했다.
후송정에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송정(松亭)이라 불리는 정자가 칠보들판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광해군의 폭정을 바로잡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들이 낙향하여 시를 읊으며 세월을 보냈던 곳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 모여, 유유자적하던 이들 선비를 가리켜 사람들은 ‘7광(狂)·10현(賢)’이라 일컬었다. 송정 뒤쪽 영모당(永慕堂)에는 ‘7광·10현’을 기리기 위해 칠광도와 십현도를 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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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옆에는 시산사(詩山祠)가 있다. 시산사는 면암 최익현과 고현동 출신의 문인 김기술, 김직술을 모신 사당이다.
산길을 따라 상춘대로 향한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시누대가 숲길을 따라 2층 누각 형태의 상춘대에 올랐으나 숲으로 가려 전망이 트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춘대에서 10여 m 위쪽으로 올라가니 칠보들판과 마을, 칠보면을 가르면서 흘러가는 동진강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성황산(125m) 정상에서 곧바로 무성서원으로 내려가는 길과 한정 사료관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린다.
사료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송산사로 들어선다. 송산사(松山祠)는 7광 10현 중 김대립, 김응빈, 김정, 김감, 김급, 송치중 등 6인을 모신 사당이다.
송산사에서 산자락으로 내려서니 한정(閒亭)이 기다리고 있다. 조선 중종 때 태학관에 있다가 사화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고향으로 내려온 김약회가 1520년 경 지은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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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시에 합격한 김약회는 당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 하서 김인후, 일재 이항 등과 교류했다. 김약회가 세운 한정은 정유재란 때 소실됐다가 1875년 재건됐고, 1920년 중건됐다.
한정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필양사라는 사당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필양사(泌陽祀)는 이 마을에서 살았던 애국지사 김영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역유림들이 세운 사당이다. 김영상은 1906년 무성서원에서 일으킨 태인의병 당시 70세의 노령에도 최익현, 임병찬 등과 함께 의병운동을 주도했다가 군산감옥에 투옥돼 단식 끝에 1911년 옥사했다.
성황산과 원촌마을에는 무성서원은 물론 세 개의 정자와 네 개의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선비들이 음풍농월만 즐기던 정자가 아니고, 왕의 폭정을 바로잡으려다 낙향해 절치부심했던 흔적이 서려있는 곳이다.
나라를 일제에 빼앗길 시점에 의병을 일으켰던 애국혼이 살아있는 곳이다. 무성서원 둘레길에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선비정신이 그대로 스며있다.
<장갑수·여행작가>
▶무성서원 둘레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 중 하나인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폭정을 일삼던 중앙권력과 외세에 맞섰던 이 지역출신 선비들의 혼이 서려있는 정자와 사당을 잇는 길이다.
※코스 : 무성서원 주차장→무성서원→선비문화사료관→후송정→송정→영모당→시산사→상춘대→송산사→한정→필양사→무성서원 주차장
※거리, 소요시간 : 2㎞, 1시간30분 소요(관람시간 포함)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무성서원 주차장(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526-1)
/정리=박희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