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조들의 조경수를 심자 / 문병채

2024년 07월 03일(수) 20:37

문병채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

관공서나 공공 건물을 지을 경우 반드시 화단도 함께 조성하고 식재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근대 건축이 나타면서 이름도 낯설은 수목들이 화단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한옥형 건물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는 완전 외래종까지도 들어 있었다. 단지 조경수로서 가치와 미적인 면만 고려해서 화단을 채워왔다. 그것은 현대건축이든 전통 건축이든 구별되지 않았다. 그 결과, 쉼터 획일화로 모양도 멋도 없어져서 녹지공간이나 휴게장소로서의 시각성과 가치성이 떨어졌고, 시민들로부터 소외 공간으로 되어 가고 있다.

그 결과, 건물이 획일화되어 가는데 녹지나 수목마저도 특색이 없어져 가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고장만이라도 이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녹지 수목 식재의 다양성은 훨씬 도시를 개성있게 만든다. 공원이나 녹지 조성의 다양성에는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비록 관상수나 경관림으로 부족함이 있더라도 나름대로 선조들의 지혜와 의미를 지닌 수목들로 말이다. 특히 전통가옥이나 한옥 등을 지을 때는 한번 쯤 조상들이 뜰에 심었던 나무들로 조경할 필요가 있다. 그럼, 우리 선조들은 어떤 나무를 심었을까? 이 점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잠깐 빌려 보자.

첫째, 회화나무를 심었다. 일반 백성이 함부로 심을 수 없는 나무였다.과거에 합격한 집에서만 심었던 나무다. 대가(大家)의 뜰에 심어져 있는 까닭이 그런 연유다. 옛날에 판관(判官)이 회화나무 가지를 들고 재판에 임했던 것에서 기인했다. 지금도 새집을 지을 때 회화나무를 심는 풍속이 민간을 통해서 내려오고 있다. 자식들의 출세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유두날(6월15일)에는 잎을 냉수에 띄워 먹으며 자녀들 출세를 빈다.

둘째, 예전에 딸을 낳으면 집안에 꼭 오동나무를 심었다. 혼인 때 오동롱(장롱)을 해 주기 위해서였다. 오동나무는 가볍고 고우며 휘거나 트지 않아서 장롱이나 악기 제작에 으뜸 목재였다. 성장도 빨라 20여년 되면 큰 거목으로 컸다. 또한 봉황새가 앉는 유일한 나무로 집안을 상서럽게 한다고 믿었다. 앞뜰 오동나무에 봉(鳳)이 날라와 앉으면, 그 앞에 학(鶴)이 날라와 춤을 춘다고 생각했다.

셋째, 아들을 낳은 집에는 꼭 대추나무를 심었다. 혼인식 대례상 위에도 대추와 밤을 놓았는데, 대추는 불로장생(정력제)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신랑에게 그 자리에서 먹게 하거나 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했다. 첫날밤에 ‘힘내라’는 뜻이 들어있다. 대추나무 목재는 치밀하고 단단하여서 방망이나 떡메 등 강도 높은 기구에 쓰이기도 했다. 특히 벽조목(霹棗木)이라 해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단단하기가 돌보다 더해 도끼나 톱으로도 쉽게 쪼개거나 자를 수 없었다. 대단한 귀목으로 취급됐다.

넷째, 감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여러 우수종이 있지만, 옛날에는 ‘먹감나무’가 대세였다. 마루에서 봤을 때 가장 상석에는 꼭 먹감나무를 심었다. 마루에 앉아 대문을 봤을 때 오른쪽이 상석이다. 먹감홍시는 제사 지낼 때, 조율시이(棗栗 梨)와 함께 상에 올렸고, 딸이 시집 갈 때는 먹감나무로 ‘경대’를 만들어 보냈으며, 색상과 문양이 좋고 단단해서 널리 쓰였다. 부모 사랑(은혜)이 깃들려 있는 ‘물건(혼수품)’ 이었다. 시집 간 딸은 외롭거나 힘들 때면, 경대를 쳐다보면서 ‘먹감나무 태’를 부모라고 생각하면서 위로 받았다.

다섯째, 소나무를 심었다. 사철 푸른 소나무는 예로부터 꿋꿋한 절개를 상징해서 ‘선비’나무로 여겼다. 자녀들이 크면서 소나무 같은 절개와 기상을 본 받을 것을 염두에 둔 듯하다. 또한, 선조들은 소나무에는 벽사력( 邪力)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잡귀를 물리치는 힘을 말한다.

여섯째는 매화나무를 심었다. 벌나비도 없을 무렵에 예쁘게 꽃이 피고, 엄동설한에도 그 향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옛 선비들의 매화 사랑이 유별났다. 매화가 ‘인고의 아이콘’이어서 그랬던 듯 싶다.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으뜸으로 생각했고, 꽃이 필무렵이면 아무리 춥고 바빠도 탐매(探梅)의 나들이를 했다. 관공서나 공공건물을 지을 때 앞으로는 그 화단이나 녹지에 위의 선조들이 심었던 수종으로 식재했으면 한다. 현대식 서구형 건물은 몰라도 전통형 건물이나 한옥을 지을 때는 적극 고려했으면 한다.

금년부터는 오동나무를 심어 봉황이 앉게 하고 매화를 심어 고울을 향기로 가득 채우게 하고, 회화나무를 심어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게 하자. 또 오동나무를 심어서 혼인이 잘 이뤄지게 하고 대추나무를 심어서 건강하고 강한 애들이 태어나게 하자. 여기에다 감나무를 심어서 힘든 삶을 슬기롭게 살게 하고, 소나무를 심어 훌륭한 자질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하게 하자. 이밖에 매화나무를 심어서 어떤 한파가 몰아쳐도 맑은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