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비웃고 무시하며 외면하게 하는 법 / 박남기 |
| 2024년 07월 04일(목) 19:57 |
|
지역 대학 총장협의회를 하는데 평소에도 말이 많던 모 총장이 계속해서 반복된 주장을 하기에 그의 말을 끊도록 의장에게 신호를 보냈다. 의장이 중단을 시키자, 당신이 뭔데 남의 이야기를 끊냐며 필자에게 화를 냈다. 필자가 곧바로 사과했지만, 그와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났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상가에서 마주쳤는데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뒤끝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필자가 별 생각 없이 했던 행동이 그에게는 그만큼이나 강하게 각인되었다는 의미이다. 카네기가 이야기한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게 하는 법’을 잘 실천한 결과였다.
총장 시절 교수와 직원들이 면담하러 오면 끝까지 듣고 있기가 힘들어서 중간에 간단히 이야기해달라거나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의 요지가 이것이지요”라고 하면서 말을 끊은 적이 많았다. 핑계는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내 짐작이 맞았고, 상대가 그렇다고 할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을 제시하고 내보냈다. 필자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내 방에 왔던 사람들은 설령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갔다고 하더라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기의 처지를 호소하고 필자의 위로도 받고 싶었을 텐데 내가 중간에 끊었으니 말이다. 나이도 어린 x이 총장 자리에 앉았다고 스스로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이라고 뒤에서 비웃었을 것이다. 필자를 비웃게 하는 법을 나름 잘 실천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이고, 그래서 면담 요청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그리하면 내가 중간에 말을 끊거나 내 이야기를 하더라도 상대가 이해하며 받아들인다. 내가 회의를 주재할 때는 시작 시에 회의 종료 시간을 명확히 하고, 참가자들의 동의를 얻은 후에 회의를 시작한다. 너무 길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회의 종료 시간을 환기시키면서 양해를 구하면, 자신들이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말을 간결하게 한다. 따라서 상대가 나를 외면하게 하려면 대화 시작하기 전에 상황을 이야기해서도 안 되고, 회의 종료 시간을 미리 정하고 동의를 구해서도 안 된다.
내 좌우명은 ‘큰 귀 작은 입’인데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직업이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가 싶어서 대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나에게 이야기를 청하기 전에는 가능하면 들으면서 추임새만 매긴다. 먼저 퇴임한 친구에 따르면 모임에서 가장 인기 없는 사람이 퇴직 교수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든 끼어들어 자기 이야기를 하려 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하면 사람들이 슬슬 피하거나, 대놓고 화를 내고, 그를 무시하여 결국 자기 스스로 모임에 나오지 않더라고 했다. 교수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며 외면하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경인교대 박인기 명예교수에 따르면 상대방의 말을 끊거나 가로채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일종의 권력 행사하기’를 하는 사람이다. 힘이 없는 사람은 그리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내가 총장 시절에 했던 무례한 행동도 권력 행사하기에 속한다.
교수들이 일반 모임에서 쓸데없이 끼어들어 가르치려 드는 것도 수업 중에 무심코 권력을 행사하던 습관이 몸에 밴 결과일 것이다. 나도 교수이니 애써 노력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보기 싫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수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건강 장수 비법의 하나는 보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다. 비웃고 무시하며 나를 외면하게 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나는 노년의 삶을 외롭게 마감할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오늘부터라도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는 말을 되새기며 다시 태어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