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의한 승자는 당대에 성공, 결국엔 부끄러운 패자 / 오주섭 |
| 2024년 07월 25일(목) 1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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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 입사한 지 1년 만에 노동조합 정책부장으로 일을 하게 됐다. 당시 노조위원장에게 노동조합 활동가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 무엇인지 물었다. 위원장은 지체(遲滯) 없이 ‘조합원과 노동조합, 그리고 회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라고 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왜 ‘사랑’을 제1의 덕목으로 꼽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후부터 인내천(人乃天),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산다.
용서와 사랑은 진실로 너그러운 강자만이 할 수 있는 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신군부가 벌인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내란 음모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80년 11월, 김 전 대통령이 아들에게 보낸 옥중 서신에서 “나 자신도 죄인이다. 남을 용서하지 않고 미워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증오와 사악으로 괴롭히는 자기가해(自己加害)의 어리석은 행동이다. 용서와 사랑을 거부해서는 인간사회의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성취할 수 없다. 용서와 사랑은 진실로 너그러운 강자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작된 사건으로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사랑과 용서’를 언급했다니 김 전 대통령의 그 마음을 가히 헤아릴 길이 없다.
정치의 안정을 이룩해서 국민적 단결과 사회적 협력을 실현하는 것, 우리나라의 장래는 여기에 달려 있어.
김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에서 우리 역사의 당쟁에 대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 때 가장 슬픈 것 중의 하나가 다른 민족에게 예를 보기 드문 잔인하기 짝이 없는 당쟁이다. 사색 당쟁. 동인·서인·남인·북인·대북·소북·노론·소론 온갖 당파가 뒤엉키면서 서로 권력만 잡으면 반대파의 씨를 말렸다. 싸운 당사자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삼족을 멸하고 여자는 모조리 데려다 노비로 삼았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던 일이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현재 우리 정치의 현실을 예견하듯 “지금 우리 민족은 큰 비약의 시점에 와있다. 아마 이 민족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민족적 중흥의 기운이 팽배하다. 미국을 위시한 세계 각지에서 선진 민족들과 겨뤄서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안에서 국민의 교육 수준이나 경제적 행정적 능력의 발휘도 괄목할 만하다. 이제 국민적 단결과 사회 안정만 이룩하여 이대로 20년만 가면 2000년까지는 선진국의 일원으로 당당한 하나가 되는 것이 결코 불가능 일이 아니다. 오직 하나 요건은 정치의 안정을 이룩해서 국민적 단결과 사회적 협력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나라의 장래는 여기에 달려 있다. 정치의 안정은 용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로 용서하며 대화와 화해를 이뤄 나갈 때 이 민족의 고질이자 현재까지 우리의 불행의 최대의 원인인 증오와 보복의 정치는 끝을 고(告)하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정의(正義)는 반드시 승리.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 노벨평화상 시상식 수상 연설에서 “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 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 필승’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에 찬 삶을 산 김 전 대통령의 소망은 언제쯤 이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