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의 모범이 되는 공직후보자는 없는 것일까? / 오수열

2024년 08월 06일(화) 19:40

오수열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 광주유학대학 학장

“위자는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기에 이에 표창함.” 지금도 이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받은 상장에는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꼬맹이들이 받는 상장 하나까지도 학업성적이 우수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품행이 반듯해 타의 모범이 돼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이 참으로 말이 아니어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고위공직자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청문회제도가 시행되면서부터 주요 공직후보자의 도덕성, 특히 청렴도에 대한 검증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돼 왔다.

인사청문회제도의 기본 취지는 후보자의 도덕성과 함께 그의 정책수행 능력을 검증하는 것에 있지만, 국민적 관심은 항상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가”하는 도덕성 검증에 집중되어 왔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다 보니 청문회 문턱을 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대통령의 임명 제안을 고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도 한다. 이른바 털어서 먼지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없고, 특히 야당 의원들의 촘촘한 그물망을 피해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는 중압감이 가져온 현실일 것이다.

어떻든 일단 국회의 청문회장에 들어선 후보자는 그와 직계 가족들의 행적이 거의 발가벗겨진 채로 국민들 앞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공개되고 있다.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하며, 부동산투기를 위한 위장전입과 상속세를 줄이기 위한 기묘한 방법 등 우리네 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상천외한 수단과 방법들이 드러나고 국민들을 경악 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불·탈법 행위들이 그동안에는 감추져 왔다가 청문회장에서야 폭로되는 것인지도 놀라운 일이다.

역시 고위공직 후보자로 “청문회장에 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무언가 달라도 다르다”는 감탄이 나올 법하고 여기에서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의 불법과 부정부패를 최종적으로 재단하는 대법관 후보자들 또한 그 도덕적 수준이 여타 후보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빌린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여 떼돈을 벌고, 다시 부동산에 투자하여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왜 고위법관이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증여나 상속을 받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문제가 되고 나서야 수익금을 사회공헌에 사용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대통령 부인이 명품 백을 받았다고 하여 특검법이 발의되고, 대법원장과 특별검사를 지낸 사람이 아름답지 못한 일로 재판을 받는 지경이 되었으니 말해 무엇을 하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직 검사가 사표를 냈다고는 하지만, 수리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야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검사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 갔다고도 한다. 야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최소한 검사 월급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도저히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어 참으로 할 말을 잃게 한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높은 사람들’을 믿고, 우리의 권력을 위임하며, 꼬박꼬박 나라에 세금을 낸다. 언젠가 권 아무개라는 대법관 등이 연루된 ‘50억 클럽’이 등장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문제는 그 사건 역시 그때만 떠들썩했지 그 뒤로는 유야무야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역시 권력과 돈 많은 사람에게 법은 무용지물인 것일까?

이러다보니 공직후보자들마다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재산을 늘리고 ‘법인카드’를 마치 개인 카드인 양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됐고, 이에 분노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세상이 됐다.

일찍이 공자는 높은 사람의 덕목으로 “어렵고 수고스러운 일을 먼저 해야 한다(先之勞之)”고 했다. 요즘 말로 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 통하는 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에 집착하는 우리사회의 고위공직자들에게 다시 정신교육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우리는 언제나 재물(財物)이 아닌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공직자를 마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