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바오밥나무 / 정희경

2024년 08월 11일(일) 19:51

제자리 서 있기란 끝없는 사막 같은 것
소문이 늘어지고 새들이 다녀갔다
안부는 산등성이에 걸려 내려오지 않는다

손 뻗고 발을 펴고 허공을 휘저어도
노을은 거미처럼 스멀스멀 기어 오고
하늘이 가지 끝에서 한 뼘씩만 자란다

양 한 마리 데리고 돌아온다던 어린왕자
별들은 반짝이고 장미는 자라지 않아
사막의 한가운데서 가시 헤는 여름밤
(시조집 ‘미나리도 꽃 피네’, 작가, 2024)

[시의 눈]

‘탁거구견 이발신지’(濯去舊見 以發新知)는 퇴계 선생의 철학적 아포리즘입니다. ‘낡은 견해를 씻어내야 새로운 지식이 피어난다’는 뜻이지요. 이 말을 기억하며 무덥고 찌는 하루를 씻고, 내일의 서늘함을 약속하려는 듯 잠자리에 듭니다. 하지만 곧 땀으로 범벅 됩니다. 마다가스카르 여행길, 내 삼십대 타오르는 바오밥나무 사막을 휘젓고 걷던 풍경을 막 지나쳐 보냅니다. 한낮엔 제자리 서있기조차 끔찍한 일, 이 지독한 여름을 벗어날 안부는 숫제 산등성이에 걸려 내려오지 않는군요. 그래, 몸은 튀겨지듯 열사에 달궈집니다. 바람처럼 ‘양을 데리고 온다던’ 그 어린왕자는 어디 갔을까요. 사막 가시를 헤쳐가는 밤, 쑤시는 방바닥을 지고 지옥행을 합니다. ‘내일은…’ 이 기대감으로 몸뚱이의 얼룩진 땀을 다시 욕실로 가 ‘탁거’(濯去)해 봅니다. 열대보다 더한, 피시식 불판의 큰 빈대떡처럼 뒤집히다가 허, ‘신지’(新知)하듯 자정을 넘깁니다. 정희경 시인은 대구에서 나, 2008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2010년 ‘서정과현실’ 당선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지슬리’(2014), ‘해바라기를 두고 내렸다’(2020) 등이 있습니다. 그는 대상에 섬세한 결을 유추해 내고 그것을 사랑의 문답법으로 바꾸는 서정성이 활달한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