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뮬라크르와 현대 대의 정치의 문제점 /시사평론가 이성대 |
| 2024년 08월 22일(목) 1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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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뮬라크르는 본래 무언가를 모방하거나 재현한 이미지나 표상이다. 이는 실제 존재하는 원본의 복제물로서 시작됐지만,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에서 시뮬라크르가 원본과 독립된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시뮬라크르는 더 이상 실제 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율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시뮬라시옹은 이러한 시뮬라크르가 현실을 대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에서 매체, 광고, 디지털 기술 등이 현실과 시뮬라크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결국 사람들은 현실보다 시뮬라크르에 더 많이 노출되고 영향을 받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실제 현실이 아닌, 가상의 현실에서 살아가게 된다.
보드리야르는 이를 네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1. 복제가 원본을 충실히 모사하는 단계 2. 복제가 원본의 변형이지만 원본과 연결되어 있는 단계 3. 복제가 원본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단계 4. 시뮬라크르가 원본과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적인 현실을 형성하는 단계 등이다.
이러한 논의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서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와 이미지의 실제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고, 가상 현실 기술은 실제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제공한다.
현대 대의정치에서 주권자와 대리인의 관계를 이러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흥미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대의정치에서는 시민들이 주권자이며, 그들의 의사를 반영할 대리인으로서 정치인을 선출한다. 이 관계에서 대리인은 원래 주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정치에서는 이 관계가 변형되고 왜곡되면서, 대리인이 더 이상 주권자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적용해 보면, 대리인은 주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립적인 의미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는 대리인이 주권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이거나, 미디어와 결탁해 이미지를 관리함으로써 자신을 실제보다 더 이상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경우를 말한다.
시뮬라시옹의 관점에서 보면, 대리인들은 주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드리야르가 설명한 네 가지 단계 중 마지막 단계와 유사하다. 즉, 대리인은 주권자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현실을 만들어내며, 주권자는 이 가상의 현실에 의해 영향받고 통제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 앞으로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주권자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다는 시뮬라크르를 제공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주권자들은 실제 현실과 다른 가상의 정치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결론적으로 현대 대의정치에서 주권자와 대리인의 관계는 시뮬라크라와 시뮬라시옹의 관계와 유사하게 변형됐다. 대리인은 주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독립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주권자는 이 가상의 현실 속에서 영향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주권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예민한 관찰과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