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리즘의 이중성 / 진호림 |
| 2024년 09월 08일(일) 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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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엄선한 콘텐츠를 보여주고, 그 영상을 시청했을 때 내가 만족할 확률을 90%, 95% 등 수치로 보여주며 보기를 강요한다. 인터넷 뉴스를 읽다가 우연히 검색한 상품은 뉴스 창을 켤 때마다 나타나 지겹도록 따라다닌다.
알고리즘은 나의 기호와 선호를 파악해 원하는 정보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고, 맞춤형 추천을 통해 편리함과 효율성을 높여준다. 알고리즘은 바쁜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고, 그 덕분에 나는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찾고 시간을 절약한다.
문제는 알고리즘이 단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노출한다는 점이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의견이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접하게 되고, 반대 의견을 접할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
우리가 알고리즘의 편리함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사이,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필터버블’ 속에서 점점 더 확증 편향에 빠져들게 된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 결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 간의 소통은 어려워지고,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된다. 오늘날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알고리즘의 작용이 큰 원인 중 하나다. 정보의 편향성 강화가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치적 갈등과 양극화를 부추긴 결과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페이스북 사용자 데이터가 선거 운동에 악용된 사례는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준다. 약 5천만 명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도널드 트럼프 캠프의 정치적 선동에 활용됐으며, 그 결과 미국 사회는 극단적인 정치적 분열로 이어졌다. 알고리즘이 대규모 데이터와 결합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에서도 알고리즘은 정치적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추천하면서, 보수나 진보 성향의 정치 유튜버들이 더욱 극단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시청자들의 편향된 견해를 더욱 강화하고, 반대 의견과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어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알고리즘은 단순히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감시하는 도구로도 기능한다. 우리의 클릭, 검색, 구매 내역 등은 알고리즘에 의해 기록되고 분석된다. 이를 통해 기업은 더욱 개인화된 광고와 콘텐츠를 제공하며,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한다.
논란이 되는 ‘액티브 리스닝’ 기술도 이러한 감시와 통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정교한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기 위해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를 이용해 우리의 대화와 행동을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등 감시 범위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늘 남의 말을 엿듣고, 누군가의 행동을 들여다보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과거에는 이런 호기심이 일상적인 대화나 행동으로 나타났지만, 오늘날에는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더 강력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알고리즘이 있지만, 알고리즘 그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알고리즘은 그저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알고리즘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호기심은 이제 거대 기업의 손에 의해 상업화된 감시 시스템으로 발전했고, 우리의 삶은 그 감시 속에 갇힌 지 오래다. 기업과 정치인들이 이익과 권력을 위해 알고리즘을 악용할 때, 사회의 정보 환경은 왜곡되고, 분열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편리함 속에서 감시와 통제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과거 보수신문과 진보 신문을 비교해보며 진실에 접근하던 것처럼, 이면을 보아야 하는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다양한 정보와 시각을 접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