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테스) 형이 말하는 아름다운 공동체 / 서순복

2024년 09월 08일(일) 19:19

서순복 품자주자시민들 대표회장 / 조선대 법학과 교수

몇 년 전 가왕 나훈아가 부르는 ‘테스형’을 듣고 깜짝 놀랐다. 고상을 떠는(?) 현자들의 철학 담론을 현실 생활 영역, 아니 시장통으로 갖고 내려왔다고나 할까? 기가 막힌 인생의 진리를 말해주는 나훈아의 어록을 필자는 좋아한다. 인문도시를 표방하는 광주 동구의 인문대학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의 권위자인 서울대 김헌 교수를 초청해서 특강을 한다기에 시간을 냈다. 강의들은 내용 중에 주민자치와 관련해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대목을 필자 나름대로 번안 각색해본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트라시마코스는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했다. 입법 영역에서 강자인 의원은 겉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한다는 것이다. 의료분야에서 의료의 강자인 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내세우면서도, 일부 극소수의 예외적인 사람들은 돈벌이에 치중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는 의료의 약자인 환자의 치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외상전문의 이국종 의사가 한 말 “환자는 가진 만큼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꽂혔다. 입법과 제도의 영역에서 단적인 예로 기초자치단체 선거에 있어서 당시 제18대 대통령후보들의 공약에서 기초자치단체장과 의원의 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로 했지만,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국회의원들에게 이익이 안돼 결국 없던 일로 됐다. 주민자치위원회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지도 1999년 동기능 전환 이후 25년이 지났고, 주민자치회도 2003년 첫 시범실시 후 10년이 지났건만, 2020년 지방자치법 전면개정 때 주민자치회 법적 근거마련도 제대로 마련하지도 못했고, 현정부 들어서는 주민자치회 운영 표준조례 개정(안)은 오히려 주민자치에 역행하는 퇴행적 조치를 내렸다. 이는 주권자인 주민에게 주권 내지 자치권을 돌려주지 않으려는 처사요, 강자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가 시범실시된 지도 벌써 십 년이 지났는데, 세상 어디에 시범실시를 십 년 넘게 하는 제도가 어디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의가 강자의 이익이라는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정의는 ’약자의 이익이다’고 했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현대 정의론의 최고 권위자인 존 롤스가 ‘정의는 약자, 즉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것이 맞는 말이다. 정의는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입법과 통치에 있어 입법의 약자인 일반시민들이 이익을 볼 수 있게 나라의 제도와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트라시마코스의 말처럼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말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다. 트라시마코스 말처럼 세상 현실이 돌아가는 것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고, 우리는 천박하게 그렇게 살지말고, 우리는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될 것이다. 우리 지역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지방의원 및 지방행정 담당자, 의사, 선장이 자신이 역할을 제대로 해야만 그 공동체가 잘 굴러갈 것이다.

내가 강자인 분야에서 약자인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나만 피곤하고 손해보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알뜰하게 챙기는데, 내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면 나만 손해보지 않은가?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헌신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존경하고 인정을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떳떳하다. 자기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나중에 들통나면 망신당하고 몰락할 것이고, 안들키더라도 얼마나 조마조마하겠는가. 마을에서 미꾸라지처럼 얍삽하게 굴고 뻔뻔한 사람이 더 잘 살고 떵떵거리는 것 같다. 정의를 지키기 위한 사람들은 약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고생만 하고 오해와 핍박을 받는 수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천국에 간다고 2천400여년전 플라톤이 국가론 제10권에서 말했다. 국회의원이나 의사가 돈벌이만 위해 일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지옥이지 않은가.

아름다운 공동체(Kallipolis)로 가는 길은 내가 강자인 분야에서 약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다면, 손해보는 느낌이 들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더 큰 생각으로 남들도 나같은 마음으로 살아주길 바라고 나부터 솔선수범한다면 내가 약자인 분야에서 제대로 된 강자를 만나고 그들로부터 최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먼저 내 분야에서 손해를 보면서 약자를 위해 노력해야만 그 덕을 본 사람이 “나도 그래야되겠구나” 결심하고 그런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이 늘어갈수록 내가 사는 곳이 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주민자치 공동체도 그렇지 않을까? 김헌 교수로부터 배우고 깨달은 내용이다.